2021.06.21

일기 2021. 7. 8. 19:03

  오늘은 장보러 마트엘 갔다가 산리오 아미보 카드를 파는 걸 발견했다. 전엔 새벽에 줄을 서도 안되더니 몇달 새 재고가 그만큼이나 풀렸나보다. 3팩을 샀는데 총 6장 중에 5장이 중복없이 나왔다. 이와중에 최애였던 마티는 없던 게 함정. 역시 물욕센서는 사이언스인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남편이랑 둘이 차안에서 3팩을 사 6개를 올클할 확률이 문득 궁금해졌다. 각자 자기 방식대로 확률을 암산하는데 둘다 학교 졸업한지가 오만년이라 자기 답들에 확신이 없었다. 이때 내 머릿속을 스쳐가는 단 한사람. 내 은사님. 우리 수학선생님. 결혼한다고 3년 전에 찾아뵙고 그 후로 연락을 단 한번도 안드렸는데! 전화해서 물어보면 안될까! 하고.

 

  사실 저렇게까지 해맑은 게 내 장점이자 단점이다. 일단 바운더리 안에 들어온 사람이면 그게 얼마나 오랜만이든 생각났을 때 바로 연락하고 연락해서도 이런저런 안부 없이 바로 용건으로 직행한다. 아주 오랫동안 이게 이상한 일이라는 자각조차 없이 살다가 언젠가 한번 친구에게 "내가 이렇게 갑자기 연락해서 시답잖은 거 물어보면 불편하냐"고 물어봤었다. 마침 그 친구는 "다른 사람이 그러면 이상할 것 같은데... 넌... 너니까 이해가 돼. 신기하게도. 네 친구들은 다 내맘이랑 비슷하지 않을까?" 해서 더이상의 의문을 품는 일 없이 느닷없이 연락해서 황당한 질문을 쏟아내는 스탠스를 유지하게 되었다.

 

  요컨데 그래서 3년만에 수학 선생님께 연락해서 한다는 말이 "나 확률 문제 하나만 풀어줘요" 였다는 얘기. 선생님께서도 "아니 이녀석이 갑자기 확률은 무슨 확률이야" 하셨지만 남편과 내가 막혔던 부분을 뚫어주셨다. 물론 다 풀어주시고는 "너희 둘, 인생이 심심하구나" 하시긴 했지만. 더불어 "시집을 갔으면 선생님한테 연락했을 때는 돈은 어떻게 모을까요, 지금 집을 살까요 이런걸 물어야지!!" 라는 야단도 들었지만. 하하. 밤 10시 반에 확률 문제풀이로 시작해서 집얘기 사는얘기 하며 두시간을 찡찡했는데 뭐랄까. 마음이 엄청 후련해졌다.

 

  근 2년간 내가 집얘길 하면서(혹은 하고 나서) 걱정이나 한숨을 쉬지 않은 적이 한번이라도 있던가. 친구랑 얘기하든 부모님이랑 얘기하든 항상 집만 생각하면 얹힌 것처럼 속이 답답했는데 오늘은 뭔가 하하호호깔깔잉잉대면서 엄청 후련했다. 생각해보면 선생님은 내게 수학선생님이라 선생님인게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 선생님이라 선생님인건데. 언젠가부터 까먹고 있었나보다. 아무튼 7월에는 꼭 만나자 약속도 잡고 용기도 희망도 에너지도 얻었다. 아 물론 확률 문제의 답도. 

 

햅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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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2

일기 2020. 5. 22. 04:29

  밤 11시에 치킨을 먹어버렸다는 이유로. 낮까지 늘어져라 뒹굴거렸다는 이유로. 잠이 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갑자기 글이 쓰고싶어졌단 이유로. 그렇게 아무 이유로 일기장을 켰다. 간간히 글은 계속 써 왔지만 일기장만은 유독 멈춰있었는데, 이렇게 아무 이유로 일기를 다시 쓸 거였으면 진작에 좀 쓸 껄 그랬나 싶기도 하고.

 

가끔. 이렇게 문장이 그리운 날들이 있다. 누군가의 문장이려나. 아니 마음이려나. 결국 사람이려나. 새벽이면 의례 깨있는 사람들이 있었었는데. 이젠 그 사람들이 없다고 특별히 허전하지도 않을 정도로 시간이 흘렀는데. 그래도 여전히. 그리운 마음은 저기 어딘가에 남아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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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3

일기 2017. 12. 13. 17:39

  엄마랑 여행. 아직 다섯 글자밖에 안 썼는데 벌써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렇다. 그 어려운 걸 드디어 간다. 정확히는 엄마랑 단둘이 아니라 내 여동생이랑 엄마 여동생까지 총 넷이지만. 하하. 어째 모녀 여행보다는 자매여행에 더 가까워진 기분이지만 조금도 아쉽지 않다. 철 없는 두 동생이 첫 해외여행에 들떠 난리 바가지인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니. 흐흐. 역시 끼워주길 잘했어. 


  평생에 한 번 있을까 하던 귀한 시간이다.

  눈에, 가슴에, 렌즈에 가득 담아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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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9

일기 2017. 7. 29. 23:43

  나는 기분이 안 좋으면 티가 아주 많이 나는 모양이다. 딱히 숨겨야겠단 생각은 안 하더라도 티를 내야겠다!!! 고 작정하고 있지도 않은데. 나도 모르게 툭툭 마음이 튀어나온다. 정확히 무엇 때문에 마음이 상한 줄도 모르고서 오늘 하루종일 인상을 쓰고 걸핏하면 "슬프다", "힝", "우울해" 하는 나를 달래느라 고생한 작고, 여리고, 아픈 남자친구에게 궁디토닥 백개 추가. 하. 늘 얘기하지만 정말이지 좋은 남자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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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2

일기 2017. 5. 2. 12:42

  며칠 전엔 전주를 다녀왔다. 아주 오래 기다려 온 전주행이었다. 


  십수년간 꿈꾸며 그리다 실제로 전주 땅을 처음 밟았던 때를 기억한다. 깜깜한 밤이었고 비가 오다 말다 했고 시외버스터미널은 낡은 냄새가 났고. 그래도 그저 좋았다. 내일이면 비빔밥을 먹을 수 있고, 특별한 건 잘 모르겠지만 몇 년이고 가고싶다 노래 부른 바로 그 곳에 지금 도착했다는 기쁨이 컸으니까. 그리고는 무얼 했다기엔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하루가 후딱 지나갔다. 비빔밥에, 모주에, 만두에, 문을 닫아 휑하던 청년몰. 격한 행복보다는 심심한 즐거움에 가까웠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이리 한번 왔으니 두번도 올 수 있겠지. 그럼 세배 반갑겠지. 이렇게 쉬운걸 왜 여태 못 왔을까. 하며.


  그리고 꼬박 삼십이개월만에 다시 왔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세월동안 전주는 훨씬 다듬어진 모양이 되어 있었다. '너 이런 거 좋아하지?' , '그래서 내가 준비해봤어!' , '마음에 드니?' 새파란 취업 준비생의 면접멘트처럼 단정하고 예쁜 모습. 근데 왜 이렇게 마음 한 구석이 헛헛한 걸까. 조금 지친 걸음으로 마주한 시장길엔 깨 내음 섞인 강바람이 불고 있었다. 추워어어어어어 하고 숨어 들어간 구석데기 의자에서 문득 정신을 차렸다. 아, 전주는 이랬었지. 나는 이런 걸 좋아했었지 참. 깨꼼한 정장 뒤에 숨겨놓은 한 조각의 심심. 아니 어쩌면 진심.



  내게 예뻐보이려 꾸민 모습도 정말 좋았지만

  역시 날 웃게하는 건 그냥 너였어.


  심심하고 즐거운

  그냥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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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2

일기 2017. 3. 22. 20:25

 지난 달인가? 트위터에 당이 활옷을 올렸었다. 근 보름도 넘게 고생했던 걸 완성한거라 너무 기뻤고 누구에게든 자랑하고 싶어 부랴부랴 '카피라잇 당이' 만 박아 올렸었는데, 벅차게 사랑받아 좋았던 것도 잠시.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이 점점 불편해졌다. 어디가 어떻게 불편한지 세세하게 짚을 순 없지만 그 트윗 어딘가에 내가 위태로이 매달려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달까? 무튼 그래서 며칠을 고민하다 방금 반쯤 충동적으로 트윗을 지웠다. 후우. 역시 사람이 안 하던 걸 하면 병난다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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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1

일기 2017. 3. 1. 01:56

  당장 오늘 내일의 내 벌이를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부모님 아래서 내가 하는 일이라면 뭐든 좋다는 남자친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하루하루 내 건강, 내 마음에만 신경을 쓰며 살다보니 정말 신기하다 싶을 만큼 내가 하고싶은 일들이 쏟아지는 게 느껴진다. 근 보름을 자수만 놓고 그걸로 일주일간 인형 옷을 만들고 다도학원을 알아보고 예서에 빠져 다시금 캘리에 눈독을 들이고 다음에는 또 어떤 옷을 만들까 컨셉을 잡고 한복을 탐하고 노래를 듣고 시를 읽는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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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0

일기 2017. 2. 20. 21:31

  어제는 친구 블로그를 들어갔다. 헛헛하니 담대한 그녀의 일기를 보고나니 마음에 조용한 돌 하나가 올라와 앉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하여 오늘은 이병률의 책을 한 권 골라들고서 가게 구석에 앉아 가만가만 펼처보았다. 볕이 잘 드는 구석에 앉아 담요와 함께 뒹굴며 서걱서걱 소리를 내는 책을 읽자니 절로 호흡이 느려지고 생각이 많아졌다. 지금은 안녕하신가영의 순간의 순간을 들으며 일기를 쓰는 중. 요즘은 정말이지 '넘나 ~ 한 것' 식의 가벼운 표현이 아니고는 말을 쓰지 않는 것 같다. 방방 뛰며 광광 우는 것도 나이지만 오늘같은 날, 지금같은 밤엔 한참 말을 삼키다 고르고 고른 표현을 뱉는 나도 나여서. 그런 내가 그리워서. 당분간은 이런 나를 찾아보는 걸로 마음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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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2

일기 2016. 12. 22. 21:13

  외롭다. 슬프다. 답답하다. 그럴 때 사람들은 무얼 할까. 내 경우에는... 음.... 단 걸 먹거나, 몇 시간씩 울거나, 술을 마시거나, 친구를 만나서 수다를 떨거나, 밤거리를 혼자 걷거나, 높은데 올라가서 한숨을 쉬거나, 돈을 펑펑 써버리는 경향이 있다. 요즘 이상하게 돈을 많이 쓴다 했는데 이게 다 스트레스의 산물인듯? 하하. 보통은 돈을 이렇게 왕창 쓰고나면 후련함과 함께 죄책감이 화악 몰아치면서 소위 말하는 현타라는 게 오는데 이번에는 10만원씩 벅벅 긁어대도 뭐 느껴지는 게 없었다. 어딘지 모르게 기분은 계속 풀리질 않고, 어디서부터 꼬였는질 모르겠어서 풀지도 못하겠고, 기분을 극단으로 몰아쳐서 우는 것도 잘 못하겠고. 그 와중에 이상하게 일본어로 된 노래가 자꾸 땡기기 시작해서 설마 제2외국어 공부를 통한 자아 발전이 답인가? 하고 있었는데 방금 깨달았다. 


  광광거리는 노래가 답이었구나!


  때는 지금으로부터 10년 하고도 자그마치 5년 전, 나는 MP3라는 신문물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게이게 요물이었단 말씀. 하교길이면 귀에는 늘 이어폰이 꽂혀있었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엔 고막이 나갈정도로 음악을 크게 들었었다. 그래. 그거다. 귀가 찢어질 것 같은 일렉음. 한참 듣고나면 어딘지 모르게 속이 시원했던 그 노래들. 내게 그런 노래는 j-pop이 처음이라 이번에 무의식적으로 일본어를 찾은 모양이다. 하하하하하하. 노래방을 간지도 너어무 오래됐다. 생각해보면 요즘 너무 바른생활이었던 듯. 술도 안 마신지 꽤 되었고. 밤에 좀처럼 나다니질 않으니. 핳. 


  내일은 하루종일 광광대는 하루를 보내야지!



  끼얏호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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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8

일기 2016. 12. 18. 21:38

  퇴사를 한 지 한달이 지났다. 나 스스로도 느낄 만큼 많은 것이 변했다. 화장을 하지 않아도 얼굴에서 빛이나고,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몸도 원래의 리듬을 찾은 모양이다. 두 달 연속으로 생리를 한게 얼마만인지. 필라테스도 열심이라 평소 자세도 신경쓰고 있다. 


  이 퇴사가 누구의 희생을 댓가로 한 것인지 잘 알고있다. 

  잊지 않고 하루를 열심히 살아야지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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