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02

일기 2017. 5. 2. 12:42

  며칠 전엔 전주를 다녀왔다. 아주 오래 기다려 온 전주행이었다. 


  십수년간 꿈꾸며 그리다 실제로 전주 땅을 처음 밟았던 때를 기억한다. 깜깜한 밤이었고 비가 오다 말다 했고 시외버스터미널은 낡은 냄새가 났고. 그래도 그저 좋았다. 내일이면 비빔밥을 먹을 수 있고, 특별한 건 잘 모르겠지만 몇 년이고 가고싶다 노래 부른 바로 그 곳에 지금 도착했다는 기쁨이 컸으니까. 그리고는 무얼 했다기엔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하루가 후딱 지나갔다. 비빔밥에, 모주에, 만두에, 문을 닫아 휑하던 청년몰. 격한 행복보다는 심심한 즐거움에 가까웠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이리 한번 왔으니 두번도 올 수 있겠지. 그럼 세배 반갑겠지. 이렇게 쉬운걸 왜 여태 못 왔을까. 하며.


  그리고 꼬박 삼십이개월만에 다시 왔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세월동안 전주는 훨씬 다듬어진 모양이 되어 있었다. '너 이런 거 좋아하지?' , '그래서 내가 준비해봤어!' , '마음에 드니?' 새파란 취업 준비생의 면접멘트처럼 단정하고 예쁜 모습. 근데 왜 이렇게 마음 한 구석이 헛헛한 걸까. 조금 지친 걸음으로 마주한 시장길엔 깨 내음 섞인 강바람이 불고 있었다. 추워어어어어어 하고 숨어 들어간 구석데기 의자에서 문득 정신을 차렸다. 아, 전주는 이랬었지. 나는 이런 걸 좋아했었지 참. 깨꼼한 정장 뒤에 숨겨놓은 한 조각의 심심. 아니 어쩌면 진심.



  내게 예뻐보이려 꾸민 모습도 정말 좋았지만

  역시 날 웃게하는 건 그냥 너였어.


  심심하고 즐거운

  그냥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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