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Impossible - Fallout, 2018

영화 2018. 7. 31. 17:20

열번째 영화, <Mission: Impossible - Fallout>

 

  자기애라고 해도 좋다. 살다보면 내가 뱉은 문장이 쨍하고 마음 속에 박혀서 도무지 글로 써두지 않고서는 배기지 않는 때가 있다. 맞다. 미션 임파서블 - 폴아웃을 보고 나온, 바로 지금 내가 그렇다. 하하. 이 두서 없고 말도 안 되는 감상글은 오직 그 문장 하나를 위해 시작했다고 하면 믿을라나. 음... 누군가는 믿을지도? 자. 그래서, 무슨 얘기가 하고 싶냐고? 한 문단만 더 쓰고 얘기해줄께. 



가, 계속가


  이미 예전부터 4편과 5편을 보고 미션 임파서블의 매력에 푹 빠졌던 나는 6편이 개봉한지 3일만에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 와아아아아아아 하고 달려가서 본 영화는 내 생각과 크게 달랐다! 세상에나! 전작 <Mission: Impossible - Roguenation> 과 감독도 같은 판에 이렇게 다른 영화가 나오리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했는데 말이지. 응? 그래서 실망이냐고? 영화가 별로냐고? 아니아니. 그건 또 아니다. 바로 직전작인 5편과 스타일이 달라서 당황했을 뿐 그간의 유명한 전작들처럼 재미도, 감동도, 우리의 이단 헌트도 있다.


  그럼 왜 그렇게 느낌이 달랐지? 너무 오래되어서 추억보정이 들어갔나? 아님 내 기억이 잘못되었나? 이상하다 싶어 집에와 전작인 로그네이션을 다시 보았는데 나의 첫 느낌이 맞았다. 두 영화는 같은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여, 어쩌면 1편과 2편으로 나누었다고 해도 좋을만큼 스토리가 이어지고있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전혀 달랐다. 아, 물론 감독에게 물어보고 쓴게 아니니 반만 들으시기를. 그래서 네가 느낀바는 뭐냐고? 바로 이것이다.


"Roguenation = This is the <Mission Impossible>"

"Fallout = Ethan hunt is the <Mission Impossible>"


  말장난 같지만 정말 그런 느낌이다. 어떻게 보면 Impossible 보다는 Possible에 더 가까운 영화와 사람이지만. <Mission Impossible> 자체가 이제는 단어 각각의 뜻보다는 하나의 의미 자체로 남을 법한 세월이라. 뭐, 이런 사족을 붙이지 않아도 이해할 사람들은 다 이해하겠지만. 하하. 그래도 조금 더 군더더기를 붙이자면, 로그네이션이 "바로 이 영화가 미션 임파서블 입니다!!" 라고 말하는 기분이라면 폴아웃은 "이단 헌트, 어쩌면 톰 크루즈 바로 이 사람이 미션 임파서블입니다!!" 라고 말하는 기분이었다. 전작의 화려한 편집점과 카메라 워킹, CG들은 다 어디 갔는지 6편에서는 딱 이단 헌트만이 눈에 들어온다. 그의 능력과, 성정, 노력, 매력까지.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별로였다는 얘기가 아니다. 일련의 잡기술 없이 "이단 헌트" 만으로 감탄이 나오도록 정말 "잘" 만든 영화다.




Ps. 

  벌써 60이 다 되어 간다는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뛰고 구르고 날라다니신 우리 톰 아저씨. 팬들 만큼이나 미션 임파서블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신 것 같던데. 앞으로도 부상 없이, 오래 봐요 우리. 그럼 뿅!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애다큐, 2014  (0) 2017.08.21
최악의 하루, 2016  (0) 2017.02.06
The Hunger Games, Until 2014.  (0) 2015.03.23
The Great Gatsby, 2013  (0) 2014.06.15
Les Miserables, 2012  (0) 2013.02.02

설정

트랙백

댓글

연애다큐, 2014

영화 2017. 8. 21. 18:14


  아홉번째 영화, <연애다큐>

 

  그렇다. 인생은 역시 알 수 없다. 윤성호를 보러 갔다가 구교환을 얻어가지고 나왔다. <연애다큐>는 사실 저 문장 하나에 내가 하고싶은 말이 다 있는지라 이렇게 블로그에 쓸 것 까지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건 <오늘 영화>에 대한 한줄평이지 <연애다큐>를 보면서 하고싶었던 얘긴 아니라서. 하하. 그럼 무슨 얘길 하고싶었느냐.




  붙였네  

  우리엄마가 너 되게 미워해. 집에 본드냄새 많이 난다고

  (끄덕)

  이걸 내가 붙이면서 생각을 진짜 많이했어. 

  어... 이렇게 막 주마등처럼 막 스쳐 지나가는거 있잖아. 

  잘했어. 잘 보냈어. 응.

  딱 붙여놓고 나서 이걸 딱 보니까 무슨 생각이 제일 먼저 드는 줄 알아?

  무슨 생각?

  음. 봐봐. 안 예쁘잖아.

  (끄덕)



  안 예쁘잖아. 결국은 이 말인 모양이다. 세상에는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연인들도 있지만, 그럴 수도 있는 거지만. 우리는 아니라고. 나는 이제 당신이 더이상 예쁘지도, 재밌지도 그렇다고 궁금하지도 않다고. 옛날옛적 예뻤던 우리가 눈에 밟혀 곱씹고 흉내내 봐야. 이쁘지 않다고. 


  깨진 도자기는 붙여도 깨진 도자기라고. 


  기껏 예쁘게 만들어 놓은건데. 어떻게 붙이면 또 붙일 수 있을것 같은데. 다시 새롭게 빚어야한다니... 물론, 어려운 일이다. 무섭고, 엄두조차 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용기를 내 본다면. 하나, 둘 그날그날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을 해본다면 분명 어느날엔간 다시금 예쁜 도자기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그런 얘기가 해주고 싶었다. 깨진 관계를 쥐고서 아파하는 건 오늘까지만! 


  자, 처음부터 다시 해봅시다. 우리.




 Ps. 

  꼬박 일주일을 썼다. 꼴랑 요거 올릴거면서 뭐 그리 오래 걸렸는지. 에효. 처음부터 요것만 쓴 척, 앉은 자리에서 한번에 써내려간 척, 세상 쿨한 척을 다 할수도 있지만 나는 아주 찌질한 미련퉁이이기 때문에 업로드 5분전 날려버린 4개의 단락. 그 많던 문장에 이렇게라도 작별 인사를 고한다. 안녕. 다음 생에 봐.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Mission: Impossible - Fallout, 2018  (0) 2018.07.31
최악의 하루, 2016  (0) 2017.02.06
The Hunger Games, Until 2014.  (0) 2015.03.23
The Great Gatsby, 2013  (0) 2014.06.15
Les Miserables, 2012  (0) 2013.02.02

설정

트랙백

댓글

최악의 하루, 2016

영화 2017. 2. 6. 03:18


  여덟번째 영화, <최악의 하루>

 

  실로 근 일년만에 여유를 찾은 남자친구와 장거리 데이트 중, 무슨 영화를 함께 볼까 고민하다 우연히 "우디 앨런이 홍상수 영화를 보고나서 서울에서 찍은 영화 같다" 는 누군가의 평을 읽고는 '아, 이걸 볼까' 싶었는데 마침 남자친구도 예전부터 보고싶었던 영화라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후후. 넘나 잘된 것. 여느 때와 같이 5. 4. 3. 2. 1 카운트를 하고는 잠잠히. 영화 속으로 빠져들었다.



제가.. 여길 잘 몰라서...

才夫才夫です

Sorry !


  은희. 배우지망생. 의미를 알 수 없던 연극 대사를 처음으로 얼굴을 보인 그녀는 볼수록 사랑스러웠고, 여러가지 의미로 내가 생각나는 그런 여자였다. 좋게 말해 통통, 나쁘게 말해 쾅쾅 기분따라 걷는 그 걸음걸이라든가, 외국어도 길찾기도 잘하는 거 하나 없으면서 그냥 내키는대로 도와줘버리는 성정이라든가, 좋아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우위인 것 처럼 행동하지만 사실 따지고보면 약자는 저라든가. 아, 물론 입고 다니는 옷도 빼놓을 수 없지. 빈티지 원피스에 야상 대강 걸치고서 구두는 아무래도 발 아프니까 워커로. 그래도 역시 제일 닮은 건 '본인 욕망에 솔직하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결코 좋은 의미만은 아니지만.



야, 너 아직도 만나고 있었냐?

뭘 만나...

은희씨 누구에요? 응?

몰라요...

하, 몰라요?


  대학을 졸업하고 기인 연애를 청산한 뒤 지독스럽게 물렁한 나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했고. 조금 더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려 몇년간 꾸준히 정진한 결과 어디가서 썅년 소리는 안 듣더라도 꽤 이기적인 캐릭터로 성장할 수 있었는데 아마도 그 채로 몇 년 더 두었했더라면 지금의 은희 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사실 본인 욕망에 솔직하다는 건 여러모로 편하다. 누군가에게 피해만 안 끼친다면 꾸준히 그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달까. 하지만 살다보면 내 욕망과 타인의 감정이 부딪치는 순간이 분명 히 오고, 계속 내 욕망에만 따르며 살다보면 그런 순간에 타인을 배려하는 방법을 잊게된다. 어디까지 혹은 언제까지 솔직할 것인가. 선을 정해두지 않으면 결국 내가 다칠 뿐이다.


  은희는 최악의 하루를 멈출 수 있었던 순간이 한번, 두번, 아니 몇번쯤 더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본인 욕망에 가장 솔직한 선택을 했고 이는 쌓이고 쌓여 오후께의 볕이 짙은 남산에서 '빵' 터지고 만다. 이때 나는 은희가 안타깝지도 불쌍하지도 그렇다고 고소하지도 않았는데 아마 그건 은희가 보통사람이었기 때문이지 싶다. 거짓말도 하고 착한일도 하고 인간관계에서 실망도 하고 상처도 주는 그냥 보통사람. 그냥 우리. 그냥 나.



긴긴 하루였어요. 하나님이 제 인생을 망치려고 작정한 날이에요. 안 그러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겠어요. 그쪽이 저한테 뭘 원하시는 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원하는 걸 드릴 수도 있지만. 그게 진짜는 아닐 거에요. 진짜라는 게 뭘까요? 전. 사실 다 솔직했는걸요. 커피 좋아해요? 전 커피 좋아해요. 진하게. 진한 각성.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하거든요. 당신들을 믿게 하기 위해선. 


  솔직하다는 것은 언어적 비언어적으로 진실을 말하는 것과, 본인(감정 및 욕망)에 솔직한 것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아니. 적어도 나는 언제가부터 그렇게 둘로 나누게 되었다. 이런 정의 구분은 한번 하기가 힘들지 일단 하기만 하면 그 뒤로 헷갈리거나 실수하는 일은 없다. 솔직하여 최악의 하루를 맞은 주인공을 보며 '솔직한게 나빠?', '왜 나빠?', '어디가 나빠?' 질문하지 않았다. 저 질문 고리의 답을 이젠 아니까. 어쩌면 나는 한뼘쯤 성장했을까.



I was a dancer                 무용을 했었어요

Oh, really?                      오, 정말요?

Yeap                            

So beautiful                    아름답네요

Thank you                       고마워요

I talk with my body              몸으로 말을 하는 거랄까?


  이순간 은희는 '솔직하게 욕망하는 나'가 아닌 '솔직한 나'가 된다. 예쁘다. 직업이 거짓이라는 사람 둘이 솔직하여 반짝반짝 빛이 난다. "Happy Ending" 이다.




+ 번외 +





계절마다 다 재미가 있잖아요. 

다른 계절도 좋을 거에요. 

계절마다 둘러봐요. 내가 노력할테니까.

노력이 필요한 일이에요?

아니요. 음... 제가 뭐 건설적인 말 잘 못하는데... 

그냥. 그냥 한 길로만 걸어가기만 하면 돼요. 같이. 한쪽 방향으로. 걸어가기만 하면 돼. 나 믿고 따라와줘요. 

응철씨.

키스해줘요.


  고백의 순간이 멋있기는 쉽지 않다. 대본도 없거니와 Save/Load도 없으니까. 두번 다시 없는 순간에 마음 가장 깊숙히 박혀있는 말을 꺼내어 전해야 한다. 어쩌면 말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덜덜 떨기도 할 것이고, 어쩌면 준비해온 것의 반도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고, 어쩌면 본인 감정에 너무 취하여 받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지 못하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사랑스러운 이유는 그것이 당신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슬쩍 가져와 그럴싸하게 만들어낸 말이 아니라 오직 당신의 언어이기 때문에. '정말 예쁘시네요' 에서 '제가 많이 좋아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더 많은 순간. 당신이라는 하나의 결로 이어지는 문장을 기대한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Mission: Impossible - Fallout, 2018  (0) 2018.07.31
연애다큐, 2014  (0) 2017.08.21
The Hunger Games, Until 2014.  (0) 2015.03.23
The Great Gatsby, 2013  (0) 2014.06.15
Les Miserables, 2012  (0) 2013.02.02

설정

트랙백

댓글

The Hunger Games, Until 2014.

영화 2015. 3. 23. 12:56

 

  일곱번째 영화, <The Hunger Games>

 

  <The Hunger Games, 2012>에 대한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내게 있어 헝거 게임이란 '배틀로얄의 아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흥미는 꽤 동했지만 그뿐이랄까. 내 시간을 할애하여 보고싶은 정도의 영화는 아니었던 것이다. 이래저래 땡기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물쩡 넘어갔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The Hunger Game: Catching Fire, 2013>가 개봉하여 예고를 보는데 눈에서 불꽃이 튀더라. 그때 '이건 무조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존에 개봉했던 것을 본 건 물론이고 책까지 전부 읽었다. 지금은 <The Hunger Game: Mockingjay, 2014>까지 전부 보고도 4달이나 지난 상태. 처음엔 영화 완결까지 나오는 걸 보고 글을 쓰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대로 올해 part 2가 개봉할 때까지 기다리다간 정말 답이 없을 것 같아 시간을 내어 이렇게 떠듬떠듬이나마 시작해본다. 부디 개판은 아니길. 또, 스러져가는 이 마음의 반절이나마 여기 매어둘 수 있길.


 

신사숙녀 여러분 큰 박수로 맞이합시다. 불타는 소녀. 작년 헝거게임의 우승자. 캣니스 에버딘

 

  아아. 캣니스 에버딘. 불타는 소녀. 긴 시리즈의 초반, 아니 중후반을 달려가는 지금까지도 영화 내에서 그녀가 주체적으로 하는 일이란 단언컨대 분노밖에 없다. 그녀는 자신이 어떤 생각인지,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체제 전복따위 알지도, 바라지도, 꿈꾸지도 않으며 노련미가 넘치는 정치적 주체들 속에서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일 뿐이다. 매 순간 욱하는 성질을 참지 못하고 본인 행동에 책임지는 일 하나도 깔끔하게 해내지 못하는 그녀. 그 미숙함이, 치열함이 사랑스럽다.

 

  그녀는 감정문제에 있어서도 서툴기는 마찬가지이다. 하긴, 처음부터 자기 마음이 사랑인 줄 알았던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느냐만은. 허허. 게일이나 피타에 대한 캣니스의 감정은 몇가지 단어로 쉽게 표현 가능하다. 연민, 동질감, 약간의 애정, 그리고 미안함. 감정의 문제에서 어디까지는 사랑이고 어디까지는 사랑이 아니라고 확정지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그녀의 서툰 사랑방식에 뭇 남성들이 본의 아닌 상처를 받는 것 같지만 난 모르겠다. 과장 좀 보태서 '솔직하고 좋은데 왜?' 싶기도 하다. 누가 별을 따달래 달을 따달래. 좀 살아보자는 그 마음이 어때서.

 

 

헝거게임에서 우승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면 그녀가 만나줄 거에요.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말씀은 고맙지만 그럴 일은 없을거에요. 그녀는 저랑 같이 왔거든요.

 

  모든 판단과 행동의 기준이 그녀인 남자. 피터 멜라크. 헤이미치의 말마따나, 캣니스는 백번을 다시 태어난다 해도 피타에게 아깝다. 그는 그만큼 헌신적이다. 사랑을 하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피타는 정말 자기 마음이나 몸 따위는 전혀 상관 없다는 듯 오로지 캣니스 위주로 움직인다. 그녀의 행동에 매번 마음을 다치면서도 그녀를 미워하지도 탓하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히 본인을 내던져 지킬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피타는 늘 알 수 없는 남자였는데 왜 그런가 곰곰히 생각하면서 영화를 다시 봤더니 모든 이야기가 지독히도 삐딱하고 의심많은 캣니스 시점에서 진행되고 있더라. 하하. 물론 내가 누군가의 감정을 살뜰히 챙길만큼 섬세한 인간이 아닌 것도 함정.

 

  언제였더라. 한참 읽고있던 책장을 덮으며 그 당시 남자친구에게 '피타는, 널 닮았어' 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 아이는 피타는 고사하고 헝거게임도 몰라서 '좋은 사람이야?' 라고 되물었는데 '응' 이라고 대답하면서 참 많이 아팠었다. 네가 자각하고 있든 그렇지 못하든, 감히 하나하나 나열할 수 없을만큼 귀한 사랑을 내가 지금 받고 있단 말을 그에게 차마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픈 줄도 모르는 그 생채기들이 언제 너를 괴롭히고 우릴 찢어놓을지 불안하다는 말을 끝끝내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개봉할 Part 2에서 피타는 그간 보여주었던 '지고지순 첫사랑' 이나, '마왕의 성으로 잡혀간 공주님' 역할에서 벗어나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될 것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억눌러온 상처들이 영화에선 어떻게 발현될까.

  

 

모든 구역은 캐피톨에게 자원을 보급합니다. 심장을 향하는 혈액처럼 말이지요.

대신 캐피톨은 질서와 안전을 보장합니다. 일하지 않는 것은 전체 시스템을 위협하는 짓입니다.

캐피톨은 판엠의 심장입니다. 심장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죠.

 

  이들이 사는 세계은 그야말로 현실의 불합리가 극대화 된 곳. 12구역이다. (방사능을 도맡아하는 구역 13은 사라졌다고 가정한다. 실은 벙커에서 체제전복을 준비하고 있지만) 이 열 두개의 구역은 각기 특화된 산업으로 캐피톨을 먹여살리지만 해당 지역구역민은 최소한의 인간적 대우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고, 심지어 그나마도 분화되어 1구역에 가까워질 수록 캐피톨 친화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물론 대우도 낫고. 하하. 이 얼마나 고도로 설계된 세계인가. 왜 이때까지 혁명이 일어날 수 없었는지 알만하다. 각 구역을 계층적으로 분화되어 피지배계층끼리 상호 동질감이 생길 수 없도록 하는 동시에 틈만 나면 미디어에서 단합이란 없으며 일시적으로 뭉치더라도 종내에는 누군가 배신하여 한 명만 살아남는 컨텐츠를 지속적으로 보여주는데 그 누가 반란을 꿈꿀 수 있으랴. 결국에는 아무도 믿을 수 없고 지금 이 체제에 숨죽이고 살아가는 게 최선이라는 것만 머릿속에 남지 않을까.

 

  단결 없는 혁명은 없다. 내 옆사람 뿐 아니라 내 옆사람 사돈의 팔촌까지도 함께 안고 가야하는 게 혁명이다. 왜 맑스가 항상 얘기하잖아.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아. 젠장. 모처럼 쉬는 날인데 또 회사 생각이 난다. 작년 일기에서 얘기했다시피 우리회사는 그야말로 민주주의를 거꾸로 타는 보일러 수준인데- 회사를 다니는 거의 모든 노동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대우가 조금도 나아지고 있지 않다. 이유는 단결을 하지 않으니까. 할 수 없으니까. 회사를 막 들어왔을 때는 다같이 파업이라도 하란말야!! 소리치고 다녔지만 요즘은 그러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세상 일이 그렇다. 각자가 사정이란 게 있는데 핏덩이같은 꼬마가 왈가왈부 할 수 없잖아. 그냥 곪아 터져서 결국에 이대로 살다가는 정말 아무도 버틸 수 없는 지경이 와야 바뀌겠지. 그 전에 애쓰는 사람들을 존경하고 지지하지만 솔직히 나도 기대를 놓은지 오래다. 규모가 커서 쉽게 망하진 않겠지만 아마 10년에서 15년쯤 지나면 완전 중소기업 수준으로 망하겠지. 난 그전에 이 바닥을 떠야겠다. 이 나라를 뜨면 더 좋고.

 

  내 글이 늘 그렇듯 얘기가 또 샜는데, 그럼 12구역 말고 캐피톨은 어떤가 하면- 그야말로 향락과 사치의 중심지이다. 사람들의 죽음조차 그들에겐 하나의 컨텐츠일 뿐 그 뒤에 무엇이 있는지, 왜 이런 걸 하는지 알 필요도 알 마음도 없으며 순진하게 누군가가 보여주는 세상을 믿고 산다. 자신이 지지하는 조공자가 죽는 건 안타깝지만 그거야 뭐 또 새로운 컨텐츠가 나오면 금방 잊혀질 감정이고, 그 외 다른 어떤 사람이 언제 어디서 왜 죽어가는지엔 차가울 만큼 관심이 없는 도시. 어떻게 보면 순수. 다르게 말하면 무지 그 자체. 캐피톨 시민도 어떻게보면 스노우 정책의 피해자라고 볼 수 있지만. 글쎄. 나는 모르는 것이, 관심 없는 것이 죄가 되는 순간이 분명히 있다고 본다. 지금 내가 누리는 지위와 문화가 누구의 시체를 밟고 누리는 것인지 좀 알기를. 항상 깨어있기를. 나 뿐 아니라 남도 챙기는 우리가 되기를. 아아. 말만 쉽다. 이런 생각 조차 영화를 볼 때만 하는데 대체 내가 캐피톨 주민과 다를게 뭐지.

 

 

안녕 Mockingjay, Part 2에서 다시 만나

 

  이 판타지 세계는 지금껏 보아온 어떤 세계보다 현실적이다. 캐피톨 시민이나, 스노우 뿐 아니라 현재의 부당한 체제를 전복하려는 세력조차 선/악 의 가치를 매길 수 없다는 점이 가장 그러하다. 13구역의 공화당세력을 보자. 고도로 계산된 프로파간다를 만들고 뿌리는 것도 물론 억 소리 나게 무섭지만 단결력을 해칠만한 아주 작은 요인조차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이 제일 무섭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 당연한 것도 신경에 거슬린다. 현실이 이만큼이나 불합리한데 분명히 여기서 벗어나야 하는데. 그에 대항해 싸우는 공화당을 이상화하거나 지향해야 할 가치로 두지 않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불길한 예감이 하나 하나 맞아들어갈 때의 소름을 잊을 수가 없다. 결국 이 세상엔 절대 선도, 절대 악도. 대의를 주장하며 모두를 지켜줄 영웅도, 지고지순한 사랑도 없다는 거겠지. 살아남는 소시민이 있을 뿐.

 

  그런 순간이 있다. 영화를 통해서 사람이 다시 보이고, 사람을 통해서 영화가 다시 보이는 순간. 굳이 사람이라 한정짓지 않아도 좋다. 세상 속에서 영화를 보고 영화 속에서 세상을 본다. 영화 한 편에 말 그대로 세계가 넓어지는 기분이 든다. 단 한번이라도 그 순간을 느끼게 되면 삶에서 영화를 놓을 수 없게 되는 것 같다.

 

 

 

Ps.

  아무리 써도 안 된다. 욕심이 너무 많아서인 것 같다. 이 얘기도 저 얘기도 다 쓰고 싶고 할 말이 너무 많다. 영화가 좋기도 '너무' 좋거니와. 잘 써보고 싶단 마음이 커서 더 그런 것 같다. 한 글에 오래 매달릴 시간이 없는 건 보너스. 하하. 진심 여기까지가 한계다. 기량부족. 뒤죽박죽일지언정 하고싶은 말은 다 했으니 (사진은 죄다 맘에 안든다. 젠장. 특히 마지막꺼. 왜 실컷 만들어놓은 GIF 안올라가냐) 먼 훗날 다시 정리하게 되더라도 일단은 이대로 업로드 :)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애다큐, 2014  (0) 2017.08.21
최악의 하루, 2016  (0) 2017.02.06
The Great Gatsby, 2013  (0) 2014.06.15
Les Miserables, 2012  (0) 2013.02.02
시라노 ; 연애조작단, 2010  (0) 2012.06.12

설정

트랙백

댓글

The Great Gatsby, 2013

영화 2014. 6. 15. 16:43
 
  여섯번째 영화, <The Great Gatsby>

  이 영화를 보게 된 건. 글쎄 어째서였을까. 아무튼간에 오래 기다린 영화였고, 드디어 나왔다는 말에 영화관으로 달려갔던 기억이 있다. 작년, 여름이 채 다가오기 전. 지금은 누구였는지 기억도 나지않는 상대와 가슴시리게. 아프게. 다리에 힘이 풀리도록. 크레딧의 끝이 보이던 순간까지도 이 영화의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그저 멍하니 있었던 기억이 난다. 오늘 할 이야기는 영화를 봤던 그날 이후. 계속. 언젠가는. 꼭 한번은 하고 싶었던 이야기. 요컨데 아주 오랫동안 마음 속에 품어놓았던 이야기. 오래 묵혀둔 만큼 자연스럽게 나의 언어로 나오면 좋으련만... 작은 부담감과 떨림을 안고. 지금 그 첫 운을 뗀다.


당신을 다시 만나게 되어 기뻐요
안녕, 나.. 나도 다시 만나게 되서 기뻐

  재회의 순간. 전에 없는 안절부절로 보는 사람까지 떨리게 만드는 개츠비. 자기딴에는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데 따라와주지 않는 날씨가 아쉽고, 괜스레 기대했다 언제 다칠지 모르는 마음이 걱정된다. 데이지와 만나기 전 1분, 1초 전까지도 망설이던 그는 잔뜩 젖은 생쥐꼴이 되서야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다시 그녀 앞에 선 바로 이 순간. 준비한 멘트는 커녕 가벼운 미소조차 나오지 않는 그. 혼잣말처럼, 어쩌면 한숨처럼 인사를 내뱉는 그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어색한 공기 속에서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 같고. 괜히 상대방을 불편하게 한 것 같고. 다시 만나는 게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고. 기타등등 기타등등.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 그런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비단 개츠비 뿐일까. 평균치 이상의 찌질함과 궁상맞음. 그게 사랑의 새로운 정의는 아닐까.


다시한번, 난 그들과 함께 있었고 밖에 있었다

  그토록 기다려온 데이지를 마주한 개츠비의 눈동자. 그 안에는 자신의 옷과 머리가 현재 흥건히 젖어있다든가, 이미 데이지는 결혼을 했다든가, 지금까지 5년 동안 얼굴 한 번 못 봤다던가, 여기가 데이지 사촌의 집 안이라든가, 그런 건 전혀 들어있지 않다. 그 사람을 보는 순간. 오롯히 그 사람 하나로 눈 안이 가득차버린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모든 것을 세상 밖으로 밀어내는 순간. 그 눈동자 속에 내가 있다.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그 순간을 느꼈던 건, 역시 학교 대운동장에서였다. 조금은 쌀쌀한 날이었고, 지금처럼 커피가 하루 1잔 필수 기호식품처럼 자리잡지 않은 시절.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그 사람이 캔 커피 두 개를 들고 나왔고, 우리는 조금 걷다가 운동장 트랙 가장자리에 앉게 됐다. 평소와 다름없이 학교니, 수업이니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순간. 그 눈동자 안에 나만 있었다. 어디에 홀리기라도 한 것 처럼 나만 보던 그 사람. 그 때의 눈빛과 떨림을 잊을 수가 없다.


슬퍼
왜?
이렇게 이쁜 셔츠는 본적이 없어서  

  어렵게 다시 만나서일까. 개츠비는 그간 간직해 온 사랑을 마치 폭격기처럼 데이지에게 내리 꼽는다. 행복해야 하는데. 행복하고 싶은데. 다시 만나서 좋은데. 사랑하는데. 뭔가 행복하지 못하고 조금씩 위태로우며 어딘가 모르게 슬픈 기분. 결국 데이지는 울음을 터트린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이토록 무거울 수 있구나. 개츠비의 행동은 내가 알고있는 그 어떤 폭력과도 거리가 멀지만, 난 영화를 보는 내내 어딘지 모르게 계속 맞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사랑을 적극적으로 쟁취하고 표현하는 것이 상대방을 더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조금 더 뒤의 이야기.

  영화를 다시 보며 느낀 건데, 데이지와 개츠비가 함께하는 순간들은 어딘지 모르게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마치 동화처럼. 원하는 건 다 가질 수 있고, 행복하고, 행복해야하고, 시름이나 걱정같은 건 잠깐 옆에 치워두고, 지금은 그런 걸 고민할 타이밍이 아니라는 듯이. 하지만 데이지는 현실의 사람이고 둘은 미우나 고우나 현실을 살아야 한다. 둘이 갈라서게 된 것도, 끝끝내 함께할 수 없었던 것도 결국 그래서가 아닐까.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악의 하루, 2016  (0) 2017.02.06
The Hunger Games, Until 2014.  (0) 2015.03.23
Les Miserables, 2012  (0) 2013.02.02
시라노 ; 연애조작단, 2010  (0) 2012.06.12
사랑을 놓치다, 2006  (0) 2012.04.29

설정

트랙백

댓글

Les Miserables, 2012

영화 2013. 2. 2. 22:45

  다섯번째 영화, <Les Miserables>

  나는 프랑스 혁명이고, 장발장이고 그런 거 관심 없다. 그 얘기 솔직히 별로 안 좋아한다. 그러니까 애초에 원작을 얼마나 살렸고 이게 어떤 내용이고 같은 말을 늘어놓으려 이따위 글를 찌끄리는 게 아니란 말씀.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 영화가 12세 영화가 맞나 싶을 정도로 영화 보는 내내 불편했고, 혁명의 노래 앞에서 까닭 모를 눈물이 0.1g 흘렀고, 영화를 보고 돌아온 지금 반나절 동안 심장이 아프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내게 이 영화가 좋냐고 물으신다면 단호히 '네' 대답할 수 있다는 것. 그러니 평소랑은 다르게 스토리라인을 따라 생각을 정리해 서술하지 않고, 느꼈던 의문이나 감정 그대로 러프하게 가겠다.  

1. 판틴의 노래


  17번째 마주하는 내 사춘기. 남들은 벌써 적어도 10년은 전에 겪었을 아픔을 지금 내가 노래한다면 이 노래가 될 수 있을까. 몸, 상황, 환경, 의무, 도리, 욕망, 상실. 구태여 과거를 돌이키지 않아도, 까마득한 미래를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당장 오늘. 현실이 너무 힘든 그녀. 이틀 전의 나. 위대하지만 천하고 부끄러우며 부러운 당신. 180년 전 프랑스. 여기 이 사회. 한 음절 한 음절 전해지는 마음이 유리조각을 삼키는 것 마냥 아프다. 눈꼽만큼도, 티끌만큼도 괜찮지 않다. 

  이 순간 앤 해서웨이는 판틴이었고, 나였고, 우리였다. 3분이 넘는 시간동안 감정을 끝까지 유지하며 눈물을 흘리면서도 전달력을 잃지 않았다. 이 배우가 이렇게 괜찮았었나. 절망 한 가운데 있는 그녀를 보며 연민이 아니라 사랑을 느낀 것은 이상한 일일까.


2. 혁명의 시작과 진행, 실패


  어떠한 선행도 이타적일 수 없다. 언젠가 들었던 그 말이 혁명의 시작과 진행, 실패의 순간에 나와 함께했다. 이는 감히 행동의 가치를 판단하려는 것이 아니리라. 나는 알 수 없다. 시민군 중 어느 한 명의 사정도, 이유도, 진심도, 심지어 내가 울었던 이유나 왜 저 말이 혁명의 순간 나와 함께 했는지마저도. 알 수 없다. 그저 이대로, 가능한 전부를 떠 안으려 할 뿐이다.


3. 자베르의 죽음


  흑백논리. 법을 지키는 건 좋은 거고 범죄자는 나쁘다. 그렇게 믿던 시간이 있었다. 꼭 저 명제가 아니더라도 흑백논리는 쉽다. 이것저것 생각할 필요 없이 그냥 어떻다. 규정해버리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점이 그렇다. 이해할 이유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은 마음. 얼마나 심플한가. 그런 나의 흑백논리가 처음으로 깨졌던 시기는 언젠가의 늦은 가을. 나를 '죽도록' 미워하고 괴롭히는 이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게, 도저히 그 사람을 미워할 수 없다는 게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사람은, 사회는, 아니 그것이 무엇이든 규정할 수 없다. 규정은 언제나 어느정도의 생략과 과장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그와 같은 건 오로지 그 하나만 있으며 어떠한 디테일도 무시되지 않은 그 전체만이 그를 대변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접하는 정보는 편협하고, 전체를 다 본다한들 오롯히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서 자베르의 혼란과, 그가 자신의 생을 버리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나도, 당신도, 누구라도 그럴 수 있기에.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e Hunger Games, Until 2014.  (0) 2015.03.23
The Great Gatsby, 2013  (0) 2014.06.15
시라노 ; 연애조작단, 2010  (0) 2012.06.12
사랑을 놓치다, 2006  (0) 2012.04.29
ただ、君を愛してる, 2006  (0) 2011.10.31

설정

트랙백

댓글

시라노 ; 연애조작단, 2010

영화 2012. 6. 12. 22:03

네번째 영화, <시라노 ; 연애조작단>

  딱히 뭐랄 이유도 없이 갑자기 땡기는 것들이 있다. 비단 영화 뿐만이 아니라 책, 노래, 기타 등등 훨씬 많지 뭐. 보통때의 나는 그렇게 급작스런 땡김 보다 귀찮음이 더 강한 인간이라 대게는 '어?' 하고 잠깐 멈칫했다가 이냥저냥 그 상황을 넘기게 되는데, 우울할 때라든가  심적으로 힘들 때의 나는 땡기는 대로 그냥 해치워 버린다. 영화가 땡기면 영화를 보고, 책이 땡기면 그 자리에서 책을 사버리고, 노래도 질릴 때까지 그 한곡만 계속 듣고.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엔가 가슴이 세게 한대 맞은 것 처럼 퍽 아프다. '아아, 그래서 내가 이걸 골랐구나' 그런 생각. 

  시라노는 그런 영화였다. 이상하게 계속 땡겼다. 오며가며 영화 포스터를 볼 때마다 '아 그래 저거 보고싶다' 생각하고는 귀찮다고 미루고, 까먹고, 생각나면 또 미루고, 까먹고의 무한 반복. 그러다가 난 여차저차한 이유로 한참 잘 만나던 남자친구랑 헤어지게 됐고, 힘드네 자시네 하며 여기서 5시간이나 떨어져있는 본가까지 내려가서는 '그래 이제는 좀 보자' 하며 영화관엘 들어갔다.


당신의 사랑을 이뤄 드립니다. 쥐도 새도 모르게
 
   2010년에 이 영화를 처음 봤으니, 이 영화를 본지 벌써 2년이나 지났는데도 아직 원작이 되는 <시라노>를 보지 못했다. 보자, 보자 한지가 벌써 2년이라니 역시 평상시의 나는 꽤 게으른 모양이다. 사실 <고도를 기다리며> 같은 경우도 1학년 때 교양수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극이었는데 '보자 보자' 한지 4년만에 봤다. 하하. 시라노도 2년 후쯤 볼 수 있게 되려나. 암튼 <시라노 ; 연애조작단>은 원작을 너무도 연출하고 싶은 연출단의 부업으로써, 원작에 충실해 남의 연애를 돕는 그런 작품이다. 초반에 나오는 송새벽&류현경 커플 성사시키기를 통해 그들의 진가를 각자 확인해보시길.

  메인 스토리는 한 남자가 의뢰를 하러 연애조작단 기지에 방문하면서 시작되는데, 의뢰주가 그렇게 그리고 바라고 원해 마지않는 그녀는 알고보면 연애조작단장의 전 애인이다.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냐고? 하하. 영화라서 그런거지 무얼. 별로 내키지도 않는 의뢰를 떠맡은 연애조작단장은 그 의뢰를 열심히 성사시키기도, 그렇다고 완벽하게 방해하지도 못한 채 이야기는 계속된다. 한참 세 사람의 이야기가 복잡하게 얽혀들어갈 때 쯤 서서히 밝혀지는 연애조작단장의 과거. 진심.


사실 나 그때, 희중이랑 대현이형이 아무일 없었다는 거 알고 있었어요.
그냥.. 오해하고 싶었어요.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아서.

 
  그냥.. 오해하고 싶었어요.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아서. 라는 얘길 듣는데 심장이 터질 것 처럼 아팠다. 타인의 입을 통해 듣는 나의 진심이랄까. 이 영화를 혼자 봤더라면 나 여기서 울었겠다. 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한 발 떨어져서 생각해 보면, 시간이 좀 더 지나서 생각해보면 그게 아닌데. 사실은 그게 아닌데. 당시에는 그게 잘 안 보였다. '날 사랑한다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 '날 사랑한다면 저렇게 하면 안 되는 거 아냐?' 더 나아가서 '저따위로 하는 거 보면 날 사랑하는 게 아냐'까지. 변명하고 싶지 않다. 실은 더 이상 변명이 안 나온다. 나는 그때 그냥 오해가 하고 싶었던 거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하니까. '날 사랑하지만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한다' 보다, '내가 싫으니까 그런 행동을 한다' 가 더 자연스러우니까. 그게 나한테 덜 힘드니까.

  저 연애조작단장님과 나는 전혀 다른 상황에서 전혀 다른 연애를 했지만 따지고보면 결국 같은 이야기였다. 본인 마음이 답답하고 힘드니까 오해를 한 뒤 그를 바탕으로 상대방을 다그치고, 압박하고, 숨통을 죄어 상대에게 헤어짐을 통보받았다는 시시하고 껄렁한  지난 사랑 이야기. 사랑 얘기가 다 그렇다. 구체적으로 따지면 또 다 다르지만, 멀리서 보면 또 그게 그거다. 우리는 예전에 누군가가 했었을 사랑을 리어레인지 버젼으로 되풀이하고 있으며, 그 사랑은 또 우리가 모르는 다음 세대에 되풀이 될것이다. 결론은 아프고 힘들고 차이고 차고 다 그러면서 큰다는 얘기. 실수하고 하나 배웠음 됐다. 다음 사랑은 지금보다 더 성숙할 테니까.

 


성경에 그런 말이 있잖아요.
믿음, 소망과 사랑중에.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한 때 저는 그 말을 이해 못했었습니다. 저는 그 중에 믿음이 제일이라고 생각했었죠.
바보같지만, 한 때 희중씨를 믿지 못해서 우리가 멀어졌던 적이 있었죠.
저는 사랑이 뭔지 모릅니다. 그래서 사랑보다는 믿음이 더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했었죠.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믿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 믿는다는 것을.
그냥, 조금만 더 사랑하면 다 해결 될 문제인데.. 왜 행복한 순간은 그 때 알아채지 못할까요.
희중씨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이제 깨닫습니다.

더는 못 하겠어.
더는 할말이 없어.


  어쨌거나 저쨌거나 의뢰주와 그녀는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최종단계까지 오게 되는데, 마지막 고백 타이밍에 의뢰주가 대본을 까먹는다. 최종 고백 대본을 까먹은 그를 위해, 아니 한 때 사랑했던 그녀를 위해, 아니아니 실은 스스로를 위해. 연애조작단장은 그의 입을 빌려 그녀에게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는다. 자신의 바보스러움, 미안함, 후회.. 등. 그렇게 남은 감정의 부스러기를 세상에 탈탈 털어놓지만, 연애조작단장은 끝끝내 마지막 빈칸을 채우지 못한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더는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희중씨,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이것은 제 말입니다. 그러니까.. 뭐.. 그러니까 날 것 그대로의 제 마음이에요.
뭐 꾸미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제 마음은 이 한마디 뿐입니다.

트라우마는 저렇게 극복되는 거죠.

 

  그리고 이제 시작되는 새로운 사랑. 전 사랑이 끝끝내 채우지 못했던 빈칸을 새 사랑이 자신의 언어로 채우고. 전 사랑에서 얻어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만 같던 그녀의 트라우마는 새 사랑의 소소한 이벤트에 눈 녹듯 사라진다. 해피엔딩. 트라우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사실 예전에는 그런 생각을 했다. 트라우마는 당연히 그걸 알고있는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고, 또 고칠 수 있는 거라고. 근데 요즘 내게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꼭 그런것만도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모르는 사람이 더 잘 고칠 수 있는 것 같다고 해야할까. 뭐 그런 기분. 뭐,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좀 더 살아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나?

 



ps.
  그렇게 미루고 미뤘던 시라노를 드디어 써냈는데, 그런지 얼마 되지 않아 나와 5년을 쭉 함께했던 사람 둘을 차례로 잃었다. 어째 내 5년이 통채로 날아가버린듯한 기분이지만. 뭐, 또 괜찮아지겠지. 산다는 건 어쩌면 계속 잃고 다시 채우는 과정일지도?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e Great Gatsby, 2013  (0) 2014.06.15
Les Miserables, 2012  (0) 2013.02.02
사랑을 놓치다, 2006  (0) 2012.04.29
ただ、君を愛してる, 2006  (0) 2011.10.31
Finding Neverland, 2004  (0) 2011.10.26

설정

트랙백

댓글

사랑을 놓치다, 2006

영화 2012. 4. 29. 15:50


세번째 영화. <사랑을 놓치다>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은- 뭐랄까. 순전히 우연이다. 자게질을 하다가 아주 우연히 김연우의 '사랑한다는 흔한 말' 뮤직비디오를 보게 되었고, 그게 사실은 뮤직비디오가 아니라 영화이고, 그 노래가 삽입곡이라는 것을 또 우연히 알게되었다. 시간이 갈 수록 노래가 자꾸만 더 좋아지니 영화를 안 볼 수가 없더라. 하하.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강철중'씨도 나오겠다, <광복절 특사>에서 연인이었던 '한경숙'씨도 나오겠다, 마침 나도 사랑을 하는 중이겠다, 딱 좋구나 싶어서 봤다. 사실 처음에 재생버튼을 누를 때 만감이 교차하긴 했다. '결말 우울하면 감독 죽여버릴꺼야' (죽일 수도 없으면서) 라든지, '한참 이쁘게 사랑중이구만 괜히 부정타는 거 아냐?' 기타 등등.. 그래도 어쨌거나 중요한 건 그 모든 우려를 떨치고 결국에는 봤다는 것.


너 연애하냐? 어쭈- 아무말 안 하는 것 보니 진짠가 보네?
평생 화장도 안 할 것 같더니 화장까지 하고, 너 현태랑 사귀냐? 응?
뭘 그렇게 빤히 봐?
남대문 열렸어


  아이고 어머니. 여기 내가 있어요. 사실 나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을 때 눈치없음의 극치를 달리기 때문에 주위의 오만가지 비난을 한 몸에 받긴 했지만 말이지. '너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 라는 말이 턱까지 올라오는 이런상황이라니. 임마. 너 좋아서 면회 혼자 왔고, 너 좋아서 평소에는 하지도 않는 화장까지 하고 왔고, 너 좋아서 옷 예쁘게 입고 왔다고! 아침댓바람부터 얼마나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준비해서 간 면회일텐데, 그런 그녀를 두고 '너 현태랑 사귀냐?'라니, 정말 하나님 맙소사구만. 보아하니 대학교 입학즈음부터 주욱 짝사랑해왔는데- 이제껏 한 마디도 못하고 살다가 면회와서 갑자기 '나, 너 좋아한다고' 라는 말이 튀어나올 리는 없고. '기분나빠' 오오라를 풀풀 풍기면서 '남대문 열렸어'라고 톡 쏘아줄 수 밖에 없는 그녀라니. 킥. 귀엽고만?

  위에도 잠깐 썼지만 나 또한 굉장히 눈치가 없다. 다른 사람들이 호감-연애로 발전하는 건 꽤나 잘 잡아내는 주제에 누가 날 좋아하는지, 그러는 난 누굴 좋아하는지 깨닫는 것이 굉장히 늦다. 고백을 받는 그 순간까지도 '저사람이 날 좋아하는구나', '곧 고백을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한번도 없다. 오히려 절대 고백할 리가 없으며, 날 좋아하지 않는다 쪽에 확신했다면 모를까. 하루종일 따라다니면서 '야, 저사람 너 좋아하나보다'고 백번을 말해봐라, 내가 흔들리나. 고백받기 전까지는 '저사람은 날 그런감정으로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마음에 정말이지 0.1g의 미동도 없다. 덕분에 그 고백이란 걸 받게되면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 에효, 그런 센스는 어디서 무얼 해야 생기는 걸까나.
 


캬아, 좋다-
좋지- 저기가- 가을이면 전부다 갈대밭이다? 얼마나 좋다구.
너 보니까 좋다구 임마.


  이런저런 이유로 한참동안 연락을 못 하던 두사람은 전혀 다른 이유로 경찰서에 갔다가 우연히 마주쳐 다시 연락을 주고받게 된다. 그녀가 그를, 혹은 그를 짝사랑했던 지난 날들을 모두 잊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는데, 이혼경력 때문일까- 아니면 나이를 먹어서일까. 그녀는 그를 대함에 있어 예전보다 한층 여유가 생긴 모습이었다. 그렇게 두사람은 연락을 한참 주고받다가 그녀가 어머니 생신때문에 지방으로 잠시 내력게 되면서 키우던 개를 그에게 맞기게 되었다. 그는 주말에 집에서 라면이나 끓여먹으면서 그녀의 개를 멀뚱히 보다가 어떤 심경의 변화를 겪었는지 만나자는 친구의 연락도 마다한 채 무작정 그녀의 본가로 내려간다. 그리고는 바로 위, 면회 때 상황과는 정 반대라고 할 수 있는 이런 묘한 상황을 연출하게 되는 것이다. 아직은 사랑인지 아닌지 확실히 느끼지 못하지만. 그리고 설령,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해도. 흘리듯 지나가는 '한 마디' 속에 들어있는 분명한 진심.

  솔직히 말해 이 장면을 보는 순간 정말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내 기억속 어딘가에 잠들어 있는 그의 대사와 너무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몇 년전이냐.. 아무튼 내가 그를 사랑하기 한참 전에, 그는 남도 자전거 일주 중이었다. 봄에서 여름으로 막 넘어가던 계절의 어느 밤, 한참 자고 있는데 새벽 1시 30분이 조금 지난 시간에 전화가 왔었다. 15분도 안 되는 그날의 통화를 요약하자면 나더러 본가로 내려와 무일푼으로 여행중인 본인에게 밥을 사달라는 것이었는데- 아니아니, 이런 얘길 하고싶은 게 아니라! 그날 밤의 통화가 영화 속 저 대사와 매우 흡사했다는 거다. '아아- 좋네 여기. 이불도 있고' 라는 그의 말에, 어디길래 그러냐, 좋겠다, 재밌겠다 하며 나 나름대로 맞장구를 치는데 그가 '...이렇게 통화도 하고있고' 라고 얘기했던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서로 어떻다 할 감정도 없었고 새벽이라는 기분에 센치해지기엔 자다 깬 상태였으니, 낭만적인 순간이라고 하기엔 조금 무리지만- 그렇게 문득 전해진 '진심'에 당황해 한동안 어버버 거렸던 기억은 있다. 킥. 이제보니 나도 꽤 귀엽고만?


당신 뭐야. 미쳤어? 여기가 당신 혼자 사는데야?
억울한 사람 잠도 못자고 이 오밤중에 뭐하는 지랄이야 이게!
아저씨, 이 동네 사세요?
아니 그럼 통장이 이 동네 살지, 어디 딴 동네 가서 살까!
그럼 여기 사는 여자도 잘 아시겠네요. 아시잖아요- 모르세요?
알어.
이쁘죠. 제가 진짜로 좋아하는 여자거든요?
다음에 혹시라도 만나게 되면요, 제가 찾아왔었다고 꼭 좀 전해주세요
제 이름은 한우재거든요? 통장님. 화이팅!


 
아아. 자다가 열받아서 나온 사람들 마저 아무 말도 못 하게 만드는 저 바보스러움이라니. 하지만 이 상황에서 통장님이 그렇듯, 잔뜩 모여있는 또 다른 사람들이 그렇듯, 지금의 그에게 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생각해보면 사랑이란 게 그런 것 같다. 어느정도의 바보스러움과 눈 멂. 킥킥, 우습지만 아마 다들 공감할 것이다. 사랑할 때 자신이 얼마나 바보같은 행동을 많이 하는지. 그래도 사랑을 해 본 사람들이라면 다들 이해한다. 사랑을 하는 그 순간에는 내 온 몸과 마음 속이 온통 당신이라는 한 사람으로 가득해서 상식적이며 똑바른 행동이 도저히 나오지 않는다는 걸 모두들 알고 있으니까. 오래 전에 사랑을 정의함에 있어 '내 주변의 공기마저 움직이는 멜로디'라고 한 적이 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꽤 쓸만한 것 같다. 사랑은 대기를 움직여 내게 닿는 것이니까. 길을 걸을 때 들리는 모든 소리가 노래로 들려오는 것, 간혹 주변에 공기가 전부 사라진 것처럼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것. 그 모든게 사랑이다.


이거다 싶으면 잡는기야. 놓치고 나서 후회하지 마라.

  사실 저 대사는 이 화면에서 나오는 대사는 아니다. 여기 바로 위에 그가 한밤중에 온 동네 시끄럽게 해서 통장님께 '나 지금 사랑하고 있는 바보에요' 인증하기 전에, 대학시절 담당 코치였던 사람에게 듣는 조언이랄까. 그런데 왜 저기다 썼느냐고? 그가. 지금. 움직였잖아. 달리는 택시를 잡으러 뛰어갔잖아. 그래. 뭐 그렇게 따질 수도 있겠지. 본가까지 찾으러 내려간 건 잡은 거 아니냐. 내가 보기에 그건 두 바보가 하는 병신짓의 극치인 거고. 아아. 어쨌거나 난 이 장면에 대해 쓸꺼야. 저렇게 뛰어가서 잡는다는 게. 택시가 말도 안 되는 후신을 해서 여자가 내렸다는 게. 굳이 두 사람이 다시 사랑하기로 했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것 쯤은 안다.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저 둘은 이제껏 충분히 바보같이 굴었으니까. 정말 바보천치의  극을 달렸으니까. 이젠 똑바로 하겠지. 라는 믿음이랄까?

  잡는다는 건. 사랑한다는 건. '살아간다면 그대와 함께'라는 아주 이쁜 소망의 표현이다. 정말 인연이라면 언제든 다시 만나겠지. 그런 적당한 말로 넘어가 하늘에, 미래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하는 것. 용기를 내서 한 발자국 더 내딛는 것이다. 내게있어 그 누구보다 소중하고 고귀한 누군가가 '내가 없어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면- 뭐 어떤가. 적어도 나는 그 사람과 있는 게 가장 행복하고 그사람도 나와 있으면서 행복해 질지도 모르는데. 이거다 싶으면 잡는거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닐 때, 그때 보내는 것이 놓치고 후회하는 것 보다 훨씬 낫지 않나? 적어도 '노력'했으니 좋은경험한 셈 치고 넘길 수도 있고 말이다.



ps.
  생각은 이제 할만큼 했고. 계산도 이미 다 끝났다. 그렇게 내린 결정이라면, 그래서 실제로 행동에 옮기기까지 했다면, 이제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계산해서 내린 이 결정은, 이 움직임은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이든, 또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오든 내게 '최선'이기 때문이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e Great Gatsby, 2013  (0) 2014.06.15
Les Miserables, 2012  (0) 2013.02.02
시라노 ; 연애조작단, 2010  (0) 2012.06.12
ただ、君を愛してる, 2006  (0) 2011.10.31
Finding Neverland, 2004  (0) 2011.10.26

설정

트랙백

댓글

ただ、君を愛してる, 2006

영화 2011. 10. 31. 23:03

 

두번째 영화. <ただ、君を愛してる> 

  사실 난 일본 코메디나, 일본 신파류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싫어한다고 해야 더 정확하려나. 억지 웃음, 억지 울음을 만들어내는 것 같아서 되도록이면 마주하려고 들지 않는다. 그런데 어쩌다 이 영화를 보게 되었느냐. 역시 지인의 추천 & 공유지 뭐. 학기 중에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매 주말마다 심심하다고 주변 사람들을 찔러대니, 그 중 한 분께서 어지간히도 내가 귀찮았던걸까. 괜찮은 영화라며 보라고 던져줬었다. '앙앙, 고마워' 말은 시원시원하게 했지만 역시 신파는 싫었고- 영화를 준 그분은 모르시겠지만 이 영화는 다운로드가 완료된 시점에서 2주 동안이나 하드에 그냥 방치되어 있었다.

   내가 얼마나 이 영화에 관심이 없었냐면, 늘 같이 다니는 동기에게 '야, 너 <지금 만나러갑니다> 봤냐? 나 지금 그거 받아놨는데 영 안땡긴다-' 라며 영화이름까지 바꿔 말할 정도였다. 하하. 그래서 <지금 만나러갑니다>가 얼마나 지루한(좋은 말로 잔잔한) 영화인지를 실컷 듣고 기숙사로 돌아와 받아놓은 영화 명을 확인하는데- 내가 받은 영화는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였다. 하하. 그래서 봤다. '설마 <지금 만나러갑니다>정도는 아니겠지. 준 성의도 있고- 그냥 후딱후딱 보고 지우자' 라며 재생버튼을 눌렀다.


     저기, 조금 더 가면 버튼식 신호가 있는데 거기서 건너는게 나아.
     저기서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니까 운전하시는 분들도 여기서는 절대 멈춰주지 않거든.

     횡단보도인데?
     뭐...

    신경쓰지마. (미소)
    그냥 좀 시험해보고 싶어서 그래-
    그래도 세워주는 친절한 사람이 있나 없나 !

  사실 그에게는 이 일이 졸업 즈음에는 기억도 나지 않을 '사소한 일'이었을 것이다. 횡단보도에 오른손을 들고 서서 '그래도 멈춰주는 친절한 사람이 있나 없나 시험 해보고싶다'며 천진난만하게 웃는 괴짜 여자애 따위. 그 모습이 인상깊어 사진으로 남겼다 해도 '이 날' 자체에 의미를 두고 기억하려 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렇듯, '처음'은 항상 '처음'엔 의미가 없다. 시간이 조금 지나- 그것과 연관된 '소중한' 무언가가 생기고 나면- 그제서야 '처음'을 찾아 의미를 두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오늘 이렇게 사소하게 넘긴 많은 일들이 언제 또 '처음'으로 의미를 갖게 될까. 하하.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건 정말 '마법'같은 일이다. 오늘 이렇게 스친 사람이 언제 내게 소중한 사람이 되어- 아무것도 아닌 날에 '의미'를 줄지 모르니까. 

  어찌됐건 이 날 이후 두 사람은 친해졌다. 그녀는 첫 만남부터 그를 좋아해버린 것 같지만, 아쉽게도 그에게는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 무려 같은 과 동기. 얼굴도 별로 안 이쁘다. 단지 그녀에겐 없는 성숙미를 조금 가지고 있을 뿐. 정말 나은 구석이라곤 손톱만큼도 더 없다. 그래도 그가 좋다는데 어쩌랴. 에휴. 뭔가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짝사랑을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뭐, 이야기가 자꾸 스토리 중심으로 가니 쭉 스킵하고. 어찌됐건 그녀는 그에게 카메라를 배우게 된다. 그녀와 그의 카메라는 캐논. 아직도 그녀의 캐논을 보면 갖고싶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든다. 이 영화를 봤을 즈음의 난 필름 카메라에 푹- 빠져있어서 매일같이 저거 갖고싶다 갖고싶다 노래를 불렀던 걸로 기억한다. 왜 하고많은 카메라 중에 하필이면 캐논이냐고? 그냥, 'Canon'이란 로고가 이쁘잖아! 후후. 지금 난 미놀타양을 쓰고 있는데- 내가 우리 미놀타양을 얼마나 이뻐하는지와는 관계없이 미놀타양의 로고는 정말 객관적으로 안 예쁘다. 흙..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그런 복잡한 관계가 대학 3년 가을까지 계속됐다.
             -  나는 단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싶었을 뿐이야.

  결국 세 사람은 친구가 된다.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싶다' 라.. 나도 그러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으니 그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역시- 그런 건 잘 되지도 않을 뿐더러 많이 아프다. 덤으로 꽤 많은 노력도 필요로 하고. 3년이나 그래왔다니, 나라면 아무리 좋아해도 중간에 포기다 그런거. 나만 너무 아프잖아. 사실, 난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일'은 실패했지만- '좋아하는 사람에게 생긴 좋은 일을 웃으면서 축하'해본 적은 있다. 하하. 과장 하나도 안 보태고 꼬박 2년을 울면서 축하멘트를 준비했는데 말이지- 진짜 두번할 짓은 못 된다.  

   이래저래 사정이 생겨서 그녀는 그의 집에서 살게된다. 첫날 밤. 그녀는 몸으로 때울 생각을 하지만- 남자 쪽에서는 전혀 그런 건 생각도 안 해본 눈치. '오호라- 그거 잘됐구나♬' 싶었지만, 딱 하나 간과한게 있었다. 그녀가 그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 글쎄, 아직 사랑하는 사람이 내 스킨십을 거부한적이 한번도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그건 내 쪽에서 스킨십을 먼저 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도 있다.) 왠지.. 많이 아팠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가뜩이나 성장하지 않았다는데 일종의 컴플렉스를 가진 그녀는 '내가 여자답지 못하기때문' 이란 생각을 하는 것 같았고. 뭔가 이해가 갈 듯, 안 갈 듯 모호했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 때 그녀의 표정은 정말로 우울했다.

  어느덧 그가 좋아하는 미유키의 생일이 다가왔다. 생일 선물로 '웨딩 콜렉션'에 함께 가달라는 미유키. 물론 그는 흔쾌히 승락한다.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만 어쨌건 별탈없이 다녀 온 그날 밤 그녀의 생일도 궁금해진 그. 조심스럽게 물어보지만 그녀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대신에 내일 생일 선물을 달라는데, 그 선물이란 바로 '키스'. 콩쿨에 내보낼 사진의 테마를 '키스하는 연인'으로 잡았다며 모델이 되어 달라고 얘기한다. 다음날, 둘이서 곧 잘 사진을 찍으러 갔던 금지된 숲으로 가 둘은 키스를 한다. 그 후 화기애애한 이야기가 오가고 이제 수업이 있다며 가보겠다는 그에게 그녀는 '방금의 키스에 조금은 사랑이 있었을까'를 묻는데- 물론,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키스, 뽀뽀. 구별하는 것도 웃기니 그냥 입맞춤이라고 하자. 내게 있어 그건 그 어떤 스킨십보다 상대방의 마음이 잘 전해져 왔다. (그렇게 많이 해봤냐고 물어온다면 풉. 지나가던 개가 웃는다.) 단 한번만으로도 왜 그걸 '영혼의 교류'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아무런 말도, 그 어떠한 설명도 없었는데 그렇게 마음이 전해진다는 게 놀랍고, 신기하고, 또 마음이 아파서 그 순간 난 아무것도 못했다. 입맞춤 때에 전해져 오는 마음이란건 단순히 '사랑한다'는 한 마디가 아니다. 그 마음은 언젠가처럼 '나 죽을것 같아' 일 수도, 아가들을 보듯 '이뻐 죽겠어' 일 수도, 차마 말로는 할 수 없었던 '미안해' 일 수도, 또는 아무런 이유없이 정말 '그냥'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건 '언어'보다 강하게 마음에 직접 닿는 행동이니, 다들 정말 소중한 사람과 하는게 아닐까.

      안녕, 지금까지 고마웠어. 

  이제야 그가 자신의 사랑을 깨달았는데, 그녀는 냉장고에 쪽지 하나 딸랑 남겨놓고 떠난다. 몇날며칠을 그녀를 찾아 헤매는 그. 그냥 무사하다는 것만 확인하고 싶은데 세상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정말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 그녀. 그는 반 폐인이 된다. (사실, 감기몸살에 걸렸을 뿐이다.) 친구들이 그를 병원에 실어 나르고- 사실은 둘이 동거를 했다는 것과, 그가 그녀를 많이 좋아한다는 것도 다들 알게 된다. 이 시점에서 미유키는 어떻게 되느냐. 뜨뜨미지근하게 고백한번 못 받아보고 연애인 듯 연애가 아닌 듯 애매하게 살다가 이제와서 차인다. 하하 이런 난감한. 어쨌건 그는 건강을 회복하고, 친구들은 졸업 후 자신의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물론 그도 나름대로 자기 삶을 산다. 단지, 그녀가 돌아올 것을 믿으며 이사를 하지 않을 뿐. 

  2년만에 그녀에게서 편지가 왔다. 뉴욕에서 개인전을 하나 여는데 와서 봐줬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바로 티켓을 끊어 뉴욕으로 간 그. 기껏 뉴욕까지 갔는데 그는 그녀를 만날 수 없었다. 약속 장소에 나온 사람은 미유키. 미유키는 그녀에게 사정이 생겨서 지금은 만날 수 없으니 개인전이나 보고 가라는 말을 전해준다. 그녀의 개인전은 모레부터. 다음날 그는 하루종일 뉴욕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다. 하루종일 즐겁게 돌아다닌 그는 미유키가 집에 돌아올 즈음엔 어째선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있다. 집에 미유키가 없는 동안 시즈루의 아버지가 미유키에게 남긴 '49제 도와줘서 고맙다는' 메세지를 들은 것.  


     생에 단 한번의 키스, 단 한번의 사랑. 
             - 있잖아 마코토. 그 키스했을 때, 조금은 사랑이 있었을까?

  조금 뻔하려나. 그녀는 죽었다. 사랑했기 때문에. 그녀의 몸에는 병이 있었고, 그녀의 몸이 자라면 병도 함께 크기때문에 그녀는 늘 '성장을 억제하는 약'을 먹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를 만나 사랑하게 되면서, 자신도 사랑받고 싶었기 때문에. 설령 병이 진행된다고 해도.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생애 단 한번의 키스, 단 한번의 사랑' 모두가 예상하는대로 그는 전시장에서 이 글과, 그때 둘이 키스한 사진을 보며 눈물을 쏟아낸다. 나도 울었는지가 궁금하겠지? 아쉽겠지만 난 이 부분에서 코끝이 찡한 정도의 슬픔도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이야 왜 없었겠냐만은, 그 이상으로 그 둘이 부럽다는 생각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작년 이맘때 쯤 웹툰을 한 편 소개받았다. <속 깊은 내 여자친구 이야기> 라는 꽤 긴. 한밤중에 소개받아 새벽까지 보고, 새벽동안 그 만화와 거기 나온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 했던 걸로 기억하고있다. 그때 그 만화를 소개시켜준 사람으로부터 '이런 말 하는 것 자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혹은 이 만화를 그린 사람에게 예의가 아니지만 눈 감는 그 순간까지 사랑하고, 사랑 받았다는게 부럽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말은 처음 들었던 그 때도, 또 지금도 절절히 공감한다.


  난 어렸을 때부터 환상같은 걸 갖고 있었다. '이웃집 오빠랑 나중에 이렇고 저렇게 되서- 첫사랑이랑 첫키스를 하고 결혼을 해서 살면 정말 좋겠다'라는. 하하하. 하지만 이건 처음부터 틀어 졌던게- 내 이웃들 중 어느 한 집에도 오빠가 없었다. 그래서 첫번째 조건은 치우고- '첫사랑이랑 첫키스를 하고 결혼을 하면' 만 좀 어떻게 안될까? 했지만. 그도 만만치않음을 어느 순간부터 느끼게 되었고, 실제로 '첫사랑'이랑은 '첫키스'근처까지도 못 가봤다. 풉. 그래서 이 영화가 더 맘속에 울리는 걸지도. 내가 살지 못한 삶에 대한 동경. 뭐, 그 비슷한게 아닐까.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속 그녀는 슬퍼하면서 눈물을 흘리기엔 충분히 아름다운 사랑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너도 하고싶냐고?
풉. 대답은 비밀♬



ps. 
  그녀가 택한 소통의 방식은 '편지'. 요즘에서야 느끼는 거지만 정말 잘 골랐다는 생각이 든다. 편지는 쓰는 사람의 필체가 담겨있기 때문에 진정이라는 게 느껴지는데다, 전화나 채팅, 이메일 등등 보다 호흡이 느려서 더 따뜻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조금 답답하고 또 불편하긴 해도 말이다. 그녀가 만약, 편지가 아닌 다른 소통 수단을 이용했다면? 하하. 깊게 생각해보지 않아도 별로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e Great Gatsby, 2013  (0) 2014.06.15
Les Miserables, 2012  (0) 2013.02.02
시라노 ; 연애조작단, 2010  (0) 2012.06.12
사랑을 놓치다, 2006  (0) 2012.04.29
Finding Neverland, 2004  (0) 2011.10.26

설정

트랙백

댓글

Finding Neverland, 2004

영화 2011. 10. 26. 21:21

 

첫번째 영화. <Finding Neverland>

  이 영화를 처음 만난 건 아마 2007년 4-5월 즈음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내 마음은 '몇달째 비'라는 신기록을 세우고 있었는데 웃기게도 그때의 나는 그 사실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자기암시 중이었거든. '괜찮다'고. 이제와 솔직하게 털어놓는 거지만, 대학에 올라오고 자꾸만 사람을 잃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항상 불안했다. 힘들 때도, 즐거울 때도, 슬플 때도, 심심할 때도 '혼자'. 사실은 '혼자'인 것 보다 그에 자꾸만 익숙해져가는 나 자신이 더 무서웠다. 언젠가부터- 나도 대학생이고, 이제 어른이니까 남 앞에서 울거나 약한 소리 같은 건 하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가둬두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만 더 시간을 보내면 괜찮아 질 거라고. 괜찮다고. 이러면서 어른이 되는거라고. 잘 하고 있다고. 매번 습관처럼 주문을 외웠지만, 그래도 역시 힘든 건 힘든 거다. 뭔가 집중할 것이 필요했다.

  마침 학교 도서관에서 영화 DVD를 빌려준다는 정보를 입수했을 때라- 내 발은 아무 생각 없이 도서관으로 움직였다. 막상 도착해서는 뭘 빌려봐야 할 지 한참을 방황했고 말이다. 그 때 갑자기 머릿속을 스친 배우가 조니뎁. 멀티미디어실 한쪽 구석에서 조니뎁 출연 영화를 포털에 검색해서 찾은 게 바로 이 <Finding Neverland>다. 다른 거 없이 정말 조니뎁 나온대서 봤다. '그가 나온다면 재밌겠지'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해가면서 말이다. 장르가 뭔지, 무슨 내용인지도 몰랐고, 심지어는 꽤 눈에 익을 법한 'Neverland'라는 단어에도 반응하지 않은 채 그냥 빌려왔다. 방에 불도 다 끄고, 커텐도 다 치고, 침대 위에 노트북을 셋팅한 다음 누워서 터치패드를 손으로 비벼 DVD 재생버튼을 눌렀다.


     제임스 베리(조니 뎁)의 마음으로 보는 관객의 반응

  저 장면을 보면서 제임스가 정말 작가답다는 걸 실감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제임스의 작가적 상상력을 잘 연출한 감독 등을 칭찬해야겠지만, 난 당시만 해도 영화를 그냥 '이야기' 자체로 받아들였다. 영화를 보면서 '만드는 사람'을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 요즘은 영화를 보면서 만드는 사람을 생각하느냐고? 아쉽지만 요즘도 그닥. 이전보다야 조금 생각하는 것 같지만서도 역시 옛 버릇을 버리지 못해 영화에 이입하는 정도가 남들보다 "꽤" 강하다. 하하. 영화에 이입하는 정도가 강하다는 건 좋은거 아니냐고?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지만- 영화 한 편보고 패닉에 걸려서 몇 주, 몇 달씩 고생하는 걸 보면 그런 말은 못할껄? 암튼간에- 저렇듯 비를 내리게 하고, 개를 곰으로 만들고, 정원을 황야로 만드는 영화적, 혹은 만화적 상상력은 정말이지 영화를 보는 내내 나를 시각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즐겁게 했다. '제대로 빌려왔구나- 유후-'

  다시 영화 얘길 좀 하자. 제임스는 나름 잘나가는 극작가인데, 기껏 준비했던 연극이 관객의 냉대를 받는 바람에 쉬면서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는 '현실' 보다는 '이상(혹은 상상)'에 기본을 두는 사람이었는데, 그런 그의 아내는 지극히 '현실'적인 여자였다. 현실적인 게 꼭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 여자였던 것이다. 너무도 도도한 나머지 자신의 세계를 나누려는 남편의 시도조차 묵살시켜버리니 말이다. 그래서 그는 홀로 공원에 산책을 가게되고, 그곳에서 피터와 그의 가족들을 만나게 된다.

  피터의 엄마와 제임스는 꽤 잘 어울렸다. 제임스가 지금의 아내와 이혼하고 그녀와 재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요즘에 와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두 사람은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부모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하하.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부모의 모습이 어떤 거냐구? 아이와 공감할 줄 아는 부모랄까. 가령 유치원도 안 간 내 딸아이가 "엄마, 달님이 날 따라와!"라고 했을 때 "그건 달이 널 따라오는 게 아니라 지구와 달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그렇게 보이는 것 뿐이야" 라고 설명하는 것이 아닌, "어머, 그건 왜 그럴까? 우리 ㅇㅇ이가 달님한테 사랑받고 있는 거 아냐? 좋겠네-" 라고 대답해 줄 수 있는 부모말이다. 뭐라고 잘 설명은 못 하겠지만 내 아이의 곱고 신선하고 이쁜 시선에 기꺼이 동참하는 부모가 되었음 좋겠다. 그게 억지로 맞춰 주는 게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맞기를. 나도. 내 배우자가 될 사람도-

  잡소리 그만하고 피터들에게로 돌아가자. 피터의 형제들은 '어린이'답게 천친난만하고, 또 기발한 상상력을 갖고 있었다. 그에 반해 피터는 뭐랄까.. 척 보기에도 뭔갈 꾹꾹 누르고 있는 아이처럼 보였다. 영화를 다시 보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피터는 '그때의 나'와 꽤 많이 닮아 있었던 것이다. 어른을 혐오하면서도 빨리 어른이 되기 위해 충분히 누려야 할 모든 것들을 억지로 꾹꾹 누르는 그 모습이. 나도 남들이 보면 저랬을까. 하긴 별로 친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던 분들께서 개인적으로 불러다 챙겨주신 정도였으니 지금 생각하면 딱 저 꼴이었지 싶다. '나 지금 힘들어 죽겠어요' 라고 얼굴에 써붙이고 다니는 주제에 누구든 도와주려고 나서면 '당신은 뭐야?' 라며 삐딱하게 받아치고 마는 못된 성미.

     이것 좀 봐라, 너무 멋지구나. 이제 어린애 아니야.
     20초 동안. 언젠지 모르게 어른이 된 것 같구나.


  연극 <피터팬>의 준비가 착실히 되어가는 가운데, 피터 엄마의 병은 점점 깊어간다. 그 때 첫째인 조지가 엄마의 상태에 대해서 제임스에게 상담을 요청하는데- 그때 제임스는 조지에게 위와 같은 말을 해 준다. 내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던 것도 아마 저 즈음부터였을 것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저 대사는 내게 전혀 다르게 들렸다. '어른이라고 아프지 않은 것이 아냐, 어른이라고 꼭 눈물을 참아야 하는 건 아냐, 어른이라고 힘든 소리 무조건 안하고 그러지 않아도 돼, 지금은 울어도 괜찮아'라고. 어떻게 저 대사가 그렇게 들렸을까. 영화를 잠시 멈추고 넋이 나갈 만큼 울었던 것 같다. 나 정말 많이 힘든데. 아무도 내 옆에 없는데. '괜찮아'라며 그제야 심장이 터질만큼 꽉 '안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달까.

  사실 안아주는 것 만큼 상대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어필하는 일도 없다 싶다. 우리집은 타고난 경상도 집안 답게 가족간에 애정표현이라던가 칭찬이 드문 편인데- 부모님 계중에 따라나서면 다른 집과의 차이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단적인 예로 '단비아빠'라고 불리는 아빠 친구분께서는 내가 한참이나 자랐는데도 아직 나만 보면, 정확히는 계모임에 따라나온 아이들만 보면 '우리 ㅇㅇ이가 이만큼이나 컸네- 어디 한번 안아보자' 라고 하시며 정말 숨을 못 쉴 정도로 한참동안 안아 주시는 것이었다. 그맛에 부모님 계모임을 따라나갔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안겼을 때 '따뜻하다' 라는 느낌을 받았던 건 사실이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우리집에선 누구 생일이라고 케잌을 산 적이 한번도 없다. 하하. 찰밥에 미역국이면 됐지 뭘. 나야- 엄마아빠한테 매번 '생신축하합니다-' 란 말을 곧 잘했지만. 내 생일이라고 딱히 축하를 받아본 기억은 없다. 정말 과장하나 안 붙이고 딱 미역국이 끝.  '생일대우 받고싶음 조용히 있음 안되는구나' 그래서 방법을 바꿨다.어떻게 바꿨냐구? 생일되기 일주일도 전부터 집안에서 칭얼대기를 시작했다. '엄마 곧 큰 딸내미 생일인데 생일인데 생일인데' '아빠 딸내미 생일인데 케잌 케잌 케잌 케잌' 하하. 성과가 있었냐고? 물론이지. 그 후로 내 생일뿐 아니라 매해 크리스마스마다 꼬박꼬박 케잌을 먹었고, 심지어는 내가 칭얼대지도 않았는데 내 대학합격발표 날과 우리 집 이사한 날, 아빠가 알아서 케잌을 사오셨다. 하하. 역시 집에는 딸내미가 있어야 한다니까. 칙칙한 남동생따위 백날을 같이 살아봐라, 집 공기 삭막하다고 애교떨어주나. 


     어린이들을 위한 25개의 떨어진 좌석

   사실, 영화를 처음 볼 때만 해도- 극장 중간중간에 25개의 떨어진 좌석을 마련해 어린이들을 앉히는 마케팅 전략 이라던가, 그뒤 영화 내용 같은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도 그럴만한게 그때의 난 운다고 정신이 없었다구. 어쨌거나 내노라 하는 판, 검사 분들께서 '요정이니- 인디언이 어쩌구' 하는 연극을 보고 반응 하겠냐는 극장주의 그럴듯한 핀잔에 제임스는 즉각적으로 대응한다. 바로 어린이들을 위한 25개의 각기 떨어진 좌석을 준비한 것. 여태까지 보여진 제임스의 행동으로 미루어볼 때 딱히 어린이들을 벌이의 수단으로 이용하려고 그런 건 아니었겠지만, 어쨌거나 '외부 자극'에 솔직한 어린아이들을 어른들 사이사이에 배치함으로써 어른들의 동심을 이끌어 내는데 대 성공을 거두었다.
 
  신기한 거 하나 알려줄까나. 연극 <피터팬> 내용 중에는 팅커벨이 피터팬의 독약을 마시고 대신 죽어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때 팅커벨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연극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요정을 믿는 마음으로 박수를 쳐주면 된다. 그럼 희미해져가는 팅커벨의 빛이 강해지고 다시 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신기한 건 뭐냐고? 극 <피터팬>이 시연된 당시부터 현재까지 팅커벨이 박수를 받지 못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때 당시만 해도 <피터팬>은 어린이 동화가 아니라 어른이 보는 정극이었는데 말이다. 연세가 지긋한 할머니 할아버지들 부터 귀족, 판검사, 세상에 찌들대로 찌든 어른들이 그 장면 만큼은 한 마음이 되어 팅커벨을 위해 박수를 치는 장면을 생각해보자. 하하. 세상사가 힘드니, 어둠에 찌들었니 해도 다들 마음 한컨에 조그만 촛불 하나씩은 켜고 사는구나 싶지않은가? 아 생각만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아.


     우린 가끔 그런 척 행동했었죠. 당신이 우리 가족이라고, 안 그래요?
     당신이 제게로 와서 많은 걸 해결해줬어요.
     이젠.. 그게 사실이 아닌 건 아무 상관이 없게 됐죠.
     그게 사실이 아닐지라도. 그게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 해도.
     전 계속 그런 척 하고 살아갈래요. 죽는날까지. 당신과 함께.


  자자. 이쯤에서 깔끔하게 정리되어야 할 것이 제임스의 행복하지 않은 결혼생활이 아닐까? 다들 예상했을진 모르겠지만. 결국 제임스와 그의 아내는 이혼을 한다. 이혼이 다가올 즈음 그녀의 행동을 보면 그녀도 그녀 나름대로 제임스를 꽤 사랑했다는 것과, 그의 세계를 공유할 생각도 잠깐 했었다는 것 같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타이밍을 놓쳐버린 걸. 게다가 이제와서 그런 말을 해봤자- 솔직히 자기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아니, 처음에 산책 가자고 할 때 같이 가줬음 이럴 일이 없잖아. 아니면 그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더 들어주려 노력이라도 해 보던가. 왜 다른 여자에게 그의 아픈 어린시절, 그의 네버랜드를 들을 기회를 주냔 말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부부면서 각방은 왜 써?
 
  '아무리 서로 잡아먹을 듯이 싸우고, 꼴도 보기싫니 어쩌니 해도 각방은 절대 안된다' 는 건 우리 부모님 철학이지만, 저건 나도 꽤 공감하는 거라구. 싸웠다고, 지금 당장 얼굴보기 싫다고 피하기 시작하면 골은 깊어지기만 할 뿐이라는 걸 왜 몰라. 아, 싸우든 욕을 하든 자꾸 부대끼면서 맞춰가야 될 거 아냐. 그래서 나는 뭐가 맘에 안드는 지, 뭐 때문에 화가 났는지 아무 말도 안하고 꽁해있는 사람을 제일 싫어한다. 아, 또 갑자기 혈압이.. 어쨌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면, 그게 친구든, 애인이든, 부부든 뭐든 적어도 무언가 '관계성'을 가진 사이라면 '이런 점은 이러저러 해서 싫다. 이렇게이렇게 해줬음 좋겠다'는 식으로 서로서로 맞춰가는 정도의 애정은 갖춰주라고.
 
  흠냐, 너무 흥분했나. 이제 그의 새로운 여자. 피터네 엄마 얘기로 넘어가자. 그녀는 연극 시연날 몸져 눕고만다. 연극이 상연되는 동안 제임스는 그녀의 집으로 찾아가고 그곳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정확히는 그녀가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거지만 말이지. 아아- 여자가 고백하게 가만 냅두다니. 니가 그러고도 남자냐! 고백 정도는 남자가 먼저 하란 말이다! 음- 어쨌거나 그녀는 네버랜드에 꼭 가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너무 늦어서 안 될 것 같다며. 조만간에 가볼 수 있지 않겠냐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가고 잠에 든다. 다음 날- 혹은 며칠 후 쯤으로 보이는 어느 날- 그녀는 눈을 뜨고 제임스를 찾지만 그가 연극에 성공하고 바빠서인지 집에 오지 않는다는 얘기를 어머니에게 전해 듣고는 심란해한다. 그 때 피터들이 방으로 들어와 어머니께 보여드릴 게 있다며 의사를 설득하고, 그녀는 아들들의 부축을 받으며 1층으로 내려오는데- 다들 예상하다시피 그 곳에는 제임스가 있다. 피터들과 짜고 집 1층을 극장으로 꾸며놓은 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이제 그곳에서 그녀의 가족만을 위한. 아니 그녀 단 한 사람를 위한 연극이 시작된다.


      엄마가 보여요.

  으응, 그녀는 얼마 후 정말로 네버랜드에 간다. 글쎄, 아직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그런 불행한 일이 없어서 실감은 안 나지만. 역시 돌아가시게 되면 '엄마는 내가 있는 곳 어디든지 있으며, 믿기만 하면 언제든지 엄마를 볼 수 있다' 라는 위로 따위는 귀에 들리지도 않을 만큼 아프고, 또 슬플 것이다. 그 말이 틀렸다던가, 거짓말이라는 말이 하고싶은 게 아니라 저 당시에는 받아들이지 못할 거라는 거지. 뭐, 피터는 받아들였으니 무효. 라고 말하면 사실 할말은 없다. 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혹은 날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내 옆에 있다' 는 주의니까 말이지. 그들은 늘 내 옆에 있으면서 매순간마다 나와 대화를 시도하는 걸. 단지 평소에는 그 소리를 잡아내지 못할 뿐.
 
 
 
ps.
  암튼, 이게 바로 내 귀가 찢어져라 소리를 질러댄 유일한 영화란 말이지. 정말 소중한 것은 말로 잘 엮여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는 리뷰네. 하하. 사실 피터가 엄마와 제임스 앞에서 자신이 처음 쓴 극 대본을 갈갈이 찢어놓으며 화를 내는 장면이나, 어른들은 맨날 거짓말만 한다고 제임스에게 따지는 장면, 30초간 어른이 되었다는 그 세 장면에 대해서 자세히 쓸 마음으로 리뷰를 시작했는데- 결국 쓴 건 30초간 어른이 되었다는 그 장면 뿐이란 말이지. 핑계아닌 핑계를 대자면, 지금 마음이 그때와 같지 않은데 괜히 옛 감정 그대로 쓰려고 노력하면- 글이 가식적이 될 것 같아서- 랄까? 아하하핫. 덕분에 과거 기억인 '어른이 어쩌구에서 울었던 것'과 현재 관심사인 '이상적인 결혼'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이도저도 안한 글이 되어버렸군. 역시 처음에 딱 봤을 때 못 쓸 바에야 안 써야 되는 건데- 역시 안 쓰고 그냥 넘어가기엔 그때의 내가, 그리고 이 영화가 너무 소중해서 말야- 풉.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e Great Gatsby, 2013  (0) 2014.06.15
Les Miserables, 2012  (0) 2013.02.02
시라노 ; 연애조작단, 2010  (0) 2012.06.12
사랑을 놓치다, 2006  (0) 2012.04.29
ただ、君を愛してる, 2006  (0) 2011.10.31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