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

생각 2019. 4. 12. 15:14

  쓰레기 봉투에 꽉꽉 눌러담아 세 번을 버리고도 아직 파쇄할 편지가 남았어. 미련하게 들릴진 모르겠지만, 우리의 그 순간은 이미 지나가버렸노라고 아무리 스스로를 설득해보아도 지금은 할 수 없어. 그때의 그 고운 마음은 쓰레기통에 냉큼 가져다버리기엔 너무 벅차. 

 

  넌 그 많은 편지를 태우면서 어땠니.

 

  아프던 내가 혈색을 되찾고 세상에 둘도 없을 다정한 사람을 만나 다시 웃는 걸 보며 넌 무슨 생각을 했니. 너의 그 마지막 말은 무슨 의미였니. 다시 만나서 한번 물어나 볼까, 생각했던 때도 있어. 그래도 끝끝내 널 보지 않기로 결심한건. 내가 그냥 세상 행복한 전 여자친구로 네게 남기로 한 건. 내 호기심보다 중요한 무엇이, 이제 생겼기 때문이야.

 

  남은 편지는 이제 세통. 위경련인지 마지막으로 널 보내는 아픔인지. 이름 모를 흉통을 몸살처럼 앓고서 그래도 힘을 내야한다며 억지로 길을 나서던 날. 눈 앞에서 멈춘 너희집 가는 버스를 보고 아, 이별이구나. 싶더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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