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

생각 2019. 3. 8. 18:36

  별 생각없이 책을 구매했다. 아마 제목에 끌렸으리라. 어찌됐건 그 책은 우리집에 와서 몇 주 인가 방치 되다 어제 새벽, 드디어 내 손에 집혔다. 오래 뜸을 들이던것과는 별개로 난 세번째 장을 넘기기기도 전에 책에 푹 빠져버렸다. 울 것 같은 순간도, 숨이 막힐 것 같은 순간도 있었지만 그것 마저도 너무 좋았다. 어떤 장에서는 문득 떠오른 옛 기억에 한참 동안이나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지 못하기도 했다. 마지막 장까지 무사히 덮은 후엔 책을 읽다 이렇게 생각에 빠져든 게 대체 얼마만이지. 그런 생각을 했다.


  생각해보면 우리 외할머니는 참 정이 많으신 분이다. 정이 많으신 분이라고 쓰고 걱정이 많으신 분이라고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위의 그 소설을 읽다 요강- 부분에서 시작 된 외할머니 생각이 멈추지 않아 결국 눈에 눈물을 괴이고선 끝이 났다. 요강에 눈물이라니. 이렇게 축약하니 조금 우습다. 


  어쨌든 시작하자면, 우리 외할머니 댁 큰방에는 항상 요강이 있었다. 본인은 그 요강을 잘 쓰지 않으시지만 혹시 어린 우리가 새벽에 화장실을 가다가 넘어지거나, 부딛혀 다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외할머니 댁에서 잠을 자는 저녁이면 꼭 요강을 쓰게 하셨다. 나는 어린 나이었지만 남들 다 자는 방에서 요강을 쓰는 것도 부끄러웠고 엉덩이를 댔을 때 그 차가운 잘감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외할머니가 걱정하시니 외가에서 머무를 때면 늘상 밤에는 요강을 이용했었다. 그 요강은 항상 외할머니가 다음날 비우셨는데 두어번쯤 내가 비운적도 있다. 요강은 담는 용도이지 버리는 용도가 아니라 버릴 때는 정말 신경을 많이 써야했다. 입구쪽에 고여서 끝끝내 완전히 비워지지 않을 때도 있으니. 이런 얘기를 계속 쓰고있으니 글에서 요강냄새가 나는 것 같다. 하하. 


  외할머니가 또 신경쓰시는 부분은 우리 외손주들의 소화력였다. 암. 역시 사람은 먹고 싸는게 중요하지. 본인이 소화력이 약하셔서였을까? 항상 밥을 먹고나면 까스활명수를 따서 우리 셋에게 나눠 먹으라고 주셨다. 나는 반병정도, 동생들은 한 두 모금씩. 그 때는 외가에서 밥을 먹으면 까스활명수를 먹는 게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원래 그렇게 하는 것. 근데 이젠 안다. 세상 어떤 일에도 '당연'한 것은 없다. 외할아버지를 잃고 그 슬픔에 너무도 일찍 돌아가신 우리 외할머니.


  일전에 외할머니 생각이 났을 때는 나 결혼할 때였다. 엄마가 엄마의 엄마를 생각해서 그런가, 나도 자연스럽게 외할머니 생각이 났다. 외할머니는 나 결혼한다 그러면 진짜 너무 신나서 동네 잔치를 열어 춤이라도 추셨을 분인데. 외할아버지도 정이 많아서 외할머니가 잔치를 열어야겠다 하면 냉큼 그러자고 하셨을 분인데. 남편을 데려가서 인사시키면 우리 남편이 술을 한잔도 못하는 게 아쉬우시면서도 내색도 못하고 그저 너무 좋아서 한참동안 남편 손을 꼬옥 잡고 계셨을텐데. 두 분 다 첫 외손주의 결혼이라 정말 좋아하셨을텐데. 내가 이정도로 아쉬우니 엄마는 아마 더 했겠지.



  조만간에, 산소라도 한번 찾아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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