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너였다

생각 2015. 2. 1. 16:16

  새벽부터 부산으로 내려가던 날이었다. 쉬는 날에도 새벽에 일어나야하는 운명을 잠깐 탓하다, 나만큼이나 매번 무리하는 너를 생각하며 내가 이러면 안 되지 반성했다. 평소라면 출발했다는 내 카톡에 깨서 부산스럽게 내 안부를 챙길법한 네가 그날따라 말이 없었다. 카톡의 1도 사라지지 않았다. 이상했지만 네가 어제 새벽까지 회식에서 무리한 걸 알고있었기에 조금 더 자도록 내버려 두었다. 두시간 쯤 지났나. 미안하다는 카톡이 왔다.

 

  너와는 분명 처음 겪는 일인데. 그 말에 울컥. 화가 났다. 분명히 괜찮았는데도 그 말을 들으니 화가 났다. 뭐가 미안하냐고. 역에 마중 못나와서 미안한거 아니냐고 톡 쏘아붙이는데 너는 그저 미안하다고 했다.

 

  너는 폰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안경도 잃어버렸다고 했다. 집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어제 집에 무사히 들어왔단 보고를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지금 일어나서 준비하고 마중을 나가는데 시간이 걸릴 것 같아 미안하다고 했다. 폰이 없어서 지금은 노트북의 카톡을 쓰고 있는데 집밖에 나가면 나랑 연락이 안 될 것 같아 미리 미안하다고 했다. 전에 휴대전화 번호 외우라고 했는데 못 외워서 미안하다고 했다. 중간 번호가 도저히 기억이 안난다며. 자기가 다 잘못했으니 일단 만나자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가. 술 취해서 인사불성이 되는 인간이었던가. 다음날 나를 만난다는 건 안중에도 없이 막 달리는 그런 인간이었나. 너무 화가 났다. 화도 나고 자존심도 상했다. 그치만 저런 얘길 차마 입밖에 꺼낼수는 없었기에 그냥 됐다고 오늘은 다시 올라갈테니 다음에 보자는 얘길 했다. 그러자 너는 새벽에 일어나 굶고 내려오는거 뻔히 아는데 밥도 한끼 안먹이고 올려보내면 자기가 뭐가 되냐고 했다. 제발. 만나달라고 했다. 번호라도 알려달라고. 통화를 하자고. 미안하다고. 계속 사과했다. 나는 지금 너무 화가나서 폰 울리는 것도 뵈기 싫으니 도착해서 바로 올라갈지 널 만나고 갈지 혼자 고민해보고 이따 알려주겠다고 했다.

 

  너는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었다. 나는 잔뜩 화가 났는데, 분명 꼴도 보기 싫은데, 널 만날 생각을 하며 자꾸만 뛰는 심장이 미웠다. 이런 덜된 인간이 뭐가 좋다고. 멀리 네가 보였다. 표정 관리가 안 되서. 뾰루퉁하게 뒷모습으로 맞이했다. 뭐냐고. 마중도 안 나온 주제에 늦냐고. 그러자 네가 날 안았다. 꼭 안고서 계속 미안하다는 얘길 했다. 눈앞에 보이는 아무 까페에 들어가서도 넌 계속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 산만한 덩치가 자꾸 앵기면서.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자기가 잘못했다고. 새벽에 출발하느라 아무것도 못먹었지 않냐며. 허니버터브래드를 시켜놓고서 내가 그걸 다 먹을때까지 미안하다는 말만 계속 했다. 크림을 오만상 묻히고 먹는 내게 이쁘다는 말도 했던 것 같다. 내가 살짝 웃자 뽀뽀를 쪽 해주고는 다크서클이 오만상 내려와 팬더같은 얼굴로 어제 있었던 일을.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을 설명해주었다.

 

  태어나 처음 필름이 끊어졌단 얘기도. 내가 원하면 다시는 회식에서 술 안마시겠다는 다짐도. 오늘은 일부러 내가 좋아하는 안경으로 끼고 나왔는데 알아채지도 못하지 않냐는 투정도 부렸다. 너의 기억이 끊어진 후에도 네 안엔 줄곧 내가 있었다는 걸 확인했다. 내가 끊임없이 바둥거리고 밉다고 밀쳐내는데도 날 안은 손을 풀지 않았다.

 

 

  그게 너의 방식이었다. 너의 사과였다. 너의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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