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잎다
유난히 아침부터 일이 꼬이던 날이었다. 힘들다거나 숨이 막힌단 생각이 들었던 건 아니다.
그저 묵묵히 일을 할 뿐.
오전 10시 53분. 전화를 받았다.
볼펜 딸각거리는 소리가 서러워질 때 쯤 앉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옥상엘 올라갔다. 가서 펑펑 울었다. 무언가 입을 떼려 할수록 눈물만 계속 나왔다. 그렇게 한참 울었다. 타이밍이 좋았던 걸까. 실컷 울고 내려온 사무실엔 사람이 없었다. 모두 점심을 먹으러 간 모양이다. 덕분에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내 자리 옆 책방에 숨어들었다. 내 것이 아닌 책들로 가득한 방안에 앉아 회사에서 운 게 처음은 아닌 것 같단 생각을 했다. 그 땐 갈데가 없어서 엘리베이터 앞에서 울었지 않나 ㅡ 그땐 왜 울었더라.
도서관에서 일하는 것도 좋겠다 여기던 시절도 생각했다. 종이냄새를 잔뜩 맡으며 큰 책장사이를 노니는 걸 좋아했었지. 세세한 건 다르지만 지금 하는 일을 가만히 보면, 난 결국 나만의 도서관을 가진 셈이다. 회사 곳곳에 내 책이 숨쉬고 있고 머지않아 그것들이 모두 내게로 와 지금은 보이지 않는 책장들을 채울 것이다. 언젠가 이런 날더러 누군가 조선소 책방 아가씨라 불렀는데, 그말에 수줍게 웃었던 기억이 났다.
이런 날엔 루시아가 제맛이지. 같은 곡을 몇번이나 들었을까. 숨을 뱉을 때 간간히 느껴지는 내 몸의 울림이 그리웠다. 그 때 공기의 질감이 그리웠다. 방음도 안 되는 한평 남짓한 공간에 삐딱하게 앉아 쳐다보던 못이 그리웠다. 다시 소리가 그리웠다. 조금만 소리를 내볼까 생각할 무렵 기사님이 나타났다. 아무것도 모르고 평소처럼 시비를 붙이는데 대꾸하는 내 표정이 영 가관이었나 보다. 무슨 일 있냐고 물었다. 또 눈물이 나왔다. 아무것도 아닌 말들을 하며 잠깐 투닥거리다 나는 노래를 듣고 기사님은 잠을 잤다. 그렇게 점심시간이 끝났고. 다시 사무실로 나가기 전. 잠이 덜 깬 기사님은 내 어깨에 손을 턱 올리고서. 힘내. 라고 얘기했다. 뭘 힘내냐며 잠도 덜 깨놓고 웃긴다고 몸을 빼는데. 그런 내 어깨를 꽉 쥐며. 한번 더. 힘내. 라고 얘기했다.
힘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