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 Miserables, 2012

영화 2013. 2. 2. 22:45

  다섯번째 영화, <Les Miserables>

  나는 프랑스 혁명이고, 장발장이고 그런 거 관심 없다. 그 얘기 솔직히 별로 안 좋아한다. 그러니까 애초에 원작을 얼마나 살렸고 이게 어떤 내용이고 같은 말을 늘어놓으려 이따위 글를 찌끄리는 게 아니란 말씀.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 영화가 12세 영화가 맞나 싶을 정도로 영화 보는 내내 불편했고, 혁명의 노래 앞에서 까닭 모를 눈물이 0.1g 흘렀고, 영화를 보고 돌아온 지금 반나절 동안 심장이 아프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내게 이 영화가 좋냐고 물으신다면 단호히 '네' 대답할 수 있다는 것. 그러니 평소랑은 다르게 스토리라인을 따라 생각을 정리해 서술하지 않고, 느꼈던 의문이나 감정 그대로 러프하게 가겠다.  

1. 판틴의 노래


  17번째 마주하는 내 사춘기. 남들은 벌써 적어도 10년은 전에 겪었을 아픔을 지금 내가 노래한다면 이 노래가 될 수 있을까. 몸, 상황, 환경, 의무, 도리, 욕망, 상실. 구태여 과거를 돌이키지 않아도, 까마득한 미래를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당장 오늘. 현실이 너무 힘든 그녀. 이틀 전의 나. 위대하지만 천하고 부끄러우며 부러운 당신. 180년 전 프랑스. 여기 이 사회. 한 음절 한 음절 전해지는 마음이 유리조각을 삼키는 것 마냥 아프다. 눈꼽만큼도, 티끌만큼도 괜찮지 않다. 

  이 순간 앤 해서웨이는 판틴이었고, 나였고, 우리였다. 3분이 넘는 시간동안 감정을 끝까지 유지하며 눈물을 흘리면서도 전달력을 잃지 않았다. 이 배우가 이렇게 괜찮았었나. 절망 한 가운데 있는 그녀를 보며 연민이 아니라 사랑을 느낀 것은 이상한 일일까.


2. 혁명의 시작과 진행, 실패


  어떠한 선행도 이타적일 수 없다. 언젠가 들었던 그 말이 혁명의 시작과 진행, 실패의 순간에 나와 함께했다. 이는 감히 행동의 가치를 판단하려는 것이 아니리라. 나는 알 수 없다. 시민군 중 어느 한 명의 사정도, 이유도, 진심도, 심지어 내가 울었던 이유나 왜 저 말이 혁명의 순간 나와 함께 했는지마저도. 알 수 없다. 그저 이대로, 가능한 전부를 떠 안으려 할 뿐이다.


3. 자베르의 죽음


  흑백논리. 법을 지키는 건 좋은 거고 범죄자는 나쁘다. 그렇게 믿던 시간이 있었다. 꼭 저 명제가 아니더라도 흑백논리는 쉽다. 이것저것 생각할 필요 없이 그냥 어떻다. 규정해버리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점이 그렇다. 이해할 이유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은 마음. 얼마나 심플한가. 그런 나의 흑백논리가 처음으로 깨졌던 시기는 언젠가의 늦은 가을. 나를 '죽도록' 미워하고 괴롭히는 이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게, 도저히 그 사람을 미워할 수 없다는 게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사람은, 사회는, 아니 그것이 무엇이든 규정할 수 없다. 규정은 언제나 어느정도의 생략과 과장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그와 같은 건 오로지 그 하나만 있으며 어떠한 디테일도 무시되지 않은 그 전체만이 그를 대변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접하는 정보는 편협하고, 전체를 다 본다한들 오롯히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서 자베르의 혼란과, 그가 자신의 생을 버리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나도, 당신도, 누구라도 그럴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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