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놓치다, 2006

영화 2012. 4. 29. 15:50


세번째 영화. <사랑을 놓치다>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은- 뭐랄까. 순전히 우연이다. 자게질을 하다가 아주 우연히 김연우의 '사랑한다는 흔한 말' 뮤직비디오를 보게 되었고, 그게 사실은 뮤직비디오가 아니라 영화이고, 그 노래가 삽입곡이라는 것을 또 우연히 알게되었다. 시간이 갈 수록 노래가 자꾸만 더 좋아지니 영화를 안 볼 수가 없더라. 하하.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강철중'씨도 나오겠다, <광복절 특사>에서 연인이었던 '한경숙'씨도 나오겠다, 마침 나도 사랑을 하는 중이겠다, 딱 좋구나 싶어서 봤다. 사실 처음에 재생버튼을 누를 때 만감이 교차하긴 했다. '결말 우울하면 감독 죽여버릴꺼야' (죽일 수도 없으면서) 라든지, '한참 이쁘게 사랑중이구만 괜히 부정타는 거 아냐?' 기타 등등.. 그래도 어쨌거나 중요한 건 그 모든 우려를 떨치고 결국에는 봤다는 것.


너 연애하냐? 어쭈- 아무말 안 하는 것 보니 진짠가 보네?
평생 화장도 안 할 것 같더니 화장까지 하고, 너 현태랑 사귀냐? 응?
뭘 그렇게 빤히 봐?
남대문 열렸어


  아이고 어머니. 여기 내가 있어요. 사실 나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을 때 눈치없음의 극치를 달리기 때문에 주위의 오만가지 비난을 한 몸에 받긴 했지만 말이지. '너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 라는 말이 턱까지 올라오는 이런상황이라니. 임마. 너 좋아서 면회 혼자 왔고, 너 좋아서 평소에는 하지도 않는 화장까지 하고 왔고, 너 좋아서 옷 예쁘게 입고 왔다고! 아침댓바람부터 얼마나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준비해서 간 면회일텐데, 그런 그녀를 두고 '너 현태랑 사귀냐?'라니, 정말 하나님 맙소사구만. 보아하니 대학교 입학즈음부터 주욱 짝사랑해왔는데- 이제껏 한 마디도 못하고 살다가 면회와서 갑자기 '나, 너 좋아한다고' 라는 말이 튀어나올 리는 없고. '기분나빠' 오오라를 풀풀 풍기면서 '남대문 열렸어'라고 톡 쏘아줄 수 밖에 없는 그녀라니. 킥. 귀엽고만?

  위에도 잠깐 썼지만 나 또한 굉장히 눈치가 없다. 다른 사람들이 호감-연애로 발전하는 건 꽤나 잘 잡아내는 주제에 누가 날 좋아하는지, 그러는 난 누굴 좋아하는지 깨닫는 것이 굉장히 늦다. 고백을 받는 그 순간까지도 '저사람이 날 좋아하는구나', '곧 고백을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한번도 없다. 오히려 절대 고백할 리가 없으며, 날 좋아하지 않는다 쪽에 확신했다면 모를까. 하루종일 따라다니면서 '야, 저사람 너 좋아하나보다'고 백번을 말해봐라, 내가 흔들리나. 고백받기 전까지는 '저사람은 날 그런감정으로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마음에 정말이지 0.1g의 미동도 없다. 덕분에 그 고백이란 걸 받게되면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 에효, 그런 센스는 어디서 무얼 해야 생기는 걸까나.
 


캬아, 좋다-
좋지- 저기가- 가을이면 전부다 갈대밭이다? 얼마나 좋다구.
너 보니까 좋다구 임마.


  이런저런 이유로 한참동안 연락을 못 하던 두사람은 전혀 다른 이유로 경찰서에 갔다가 우연히 마주쳐 다시 연락을 주고받게 된다. 그녀가 그를, 혹은 그를 짝사랑했던 지난 날들을 모두 잊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는데, 이혼경력 때문일까- 아니면 나이를 먹어서일까. 그녀는 그를 대함에 있어 예전보다 한층 여유가 생긴 모습이었다. 그렇게 두사람은 연락을 한참 주고받다가 그녀가 어머니 생신때문에 지방으로 잠시 내력게 되면서 키우던 개를 그에게 맞기게 되었다. 그는 주말에 집에서 라면이나 끓여먹으면서 그녀의 개를 멀뚱히 보다가 어떤 심경의 변화를 겪었는지 만나자는 친구의 연락도 마다한 채 무작정 그녀의 본가로 내려간다. 그리고는 바로 위, 면회 때 상황과는 정 반대라고 할 수 있는 이런 묘한 상황을 연출하게 되는 것이다. 아직은 사랑인지 아닌지 확실히 느끼지 못하지만. 그리고 설령,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해도. 흘리듯 지나가는 '한 마디' 속에 들어있는 분명한 진심.

  솔직히 말해 이 장면을 보는 순간 정말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내 기억속 어딘가에 잠들어 있는 그의 대사와 너무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몇 년전이냐.. 아무튼 내가 그를 사랑하기 한참 전에, 그는 남도 자전거 일주 중이었다. 봄에서 여름으로 막 넘어가던 계절의 어느 밤, 한참 자고 있는데 새벽 1시 30분이 조금 지난 시간에 전화가 왔었다. 15분도 안 되는 그날의 통화를 요약하자면 나더러 본가로 내려와 무일푼으로 여행중인 본인에게 밥을 사달라는 것이었는데- 아니아니, 이런 얘길 하고싶은 게 아니라! 그날 밤의 통화가 영화 속 저 대사와 매우 흡사했다는 거다. '아아- 좋네 여기. 이불도 있고' 라는 그의 말에, 어디길래 그러냐, 좋겠다, 재밌겠다 하며 나 나름대로 맞장구를 치는데 그가 '...이렇게 통화도 하고있고' 라고 얘기했던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서로 어떻다 할 감정도 없었고 새벽이라는 기분에 센치해지기엔 자다 깬 상태였으니, 낭만적인 순간이라고 하기엔 조금 무리지만- 그렇게 문득 전해진 '진심'에 당황해 한동안 어버버 거렸던 기억은 있다. 킥. 이제보니 나도 꽤 귀엽고만?


당신 뭐야. 미쳤어? 여기가 당신 혼자 사는데야?
억울한 사람 잠도 못자고 이 오밤중에 뭐하는 지랄이야 이게!
아저씨, 이 동네 사세요?
아니 그럼 통장이 이 동네 살지, 어디 딴 동네 가서 살까!
그럼 여기 사는 여자도 잘 아시겠네요. 아시잖아요- 모르세요?
알어.
이쁘죠. 제가 진짜로 좋아하는 여자거든요?
다음에 혹시라도 만나게 되면요, 제가 찾아왔었다고 꼭 좀 전해주세요
제 이름은 한우재거든요? 통장님. 화이팅!


 
아아. 자다가 열받아서 나온 사람들 마저 아무 말도 못 하게 만드는 저 바보스러움이라니. 하지만 이 상황에서 통장님이 그렇듯, 잔뜩 모여있는 또 다른 사람들이 그렇듯, 지금의 그에게 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생각해보면 사랑이란 게 그런 것 같다. 어느정도의 바보스러움과 눈 멂. 킥킥, 우습지만 아마 다들 공감할 것이다. 사랑할 때 자신이 얼마나 바보같은 행동을 많이 하는지. 그래도 사랑을 해 본 사람들이라면 다들 이해한다. 사랑을 하는 그 순간에는 내 온 몸과 마음 속이 온통 당신이라는 한 사람으로 가득해서 상식적이며 똑바른 행동이 도저히 나오지 않는다는 걸 모두들 알고 있으니까. 오래 전에 사랑을 정의함에 있어 '내 주변의 공기마저 움직이는 멜로디'라고 한 적이 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꽤 쓸만한 것 같다. 사랑은 대기를 움직여 내게 닿는 것이니까. 길을 걸을 때 들리는 모든 소리가 노래로 들려오는 것, 간혹 주변에 공기가 전부 사라진 것처럼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것. 그 모든게 사랑이다.


이거다 싶으면 잡는기야. 놓치고 나서 후회하지 마라.

  사실 저 대사는 이 화면에서 나오는 대사는 아니다. 여기 바로 위에 그가 한밤중에 온 동네 시끄럽게 해서 통장님께 '나 지금 사랑하고 있는 바보에요' 인증하기 전에, 대학시절 담당 코치였던 사람에게 듣는 조언이랄까. 그런데 왜 저기다 썼느냐고? 그가. 지금. 움직였잖아. 달리는 택시를 잡으러 뛰어갔잖아. 그래. 뭐 그렇게 따질 수도 있겠지. 본가까지 찾으러 내려간 건 잡은 거 아니냐. 내가 보기에 그건 두 바보가 하는 병신짓의 극치인 거고. 아아. 어쨌거나 난 이 장면에 대해 쓸꺼야. 저렇게 뛰어가서 잡는다는 게. 택시가 말도 안 되는 후신을 해서 여자가 내렸다는 게. 굳이 두 사람이 다시 사랑하기로 했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것 쯤은 안다.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저 둘은 이제껏 충분히 바보같이 굴었으니까. 정말 바보천치의  극을 달렸으니까. 이젠 똑바로 하겠지. 라는 믿음이랄까?

  잡는다는 건. 사랑한다는 건. '살아간다면 그대와 함께'라는 아주 이쁜 소망의 표현이다. 정말 인연이라면 언제든 다시 만나겠지. 그런 적당한 말로 넘어가 하늘에, 미래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하는 것. 용기를 내서 한 발자국 더 내딛는 것이다. 내게있어 그 누구보다 소중하고 고귀한 누군가가 '내가 없어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면- 뭐 어떤가. 적어도 나는 그 사람과 있는 게 가장 행복하고 그사람도 나와 있으면서 행복해 질지도 모르는데. 이거다 싶으면 잡는거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닐 때, 그때 보내는 것이 놓치고 후회하는 것 보다 훨씬 낫지 않나? 적어도 '노력'했으니 좋은경험한 셈 치고 넘길 수도 있고 말이다.



ps.
  생각은 이제 할만큼 했고. 계산도 이미 다 끝났다. 그렇게 내린 결정이라면, 그래서 실제로 행동에 옮기기까지 했다면, 이제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계산해서 내린 이 결정은, 이 움직임은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이든, 또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오든 내게 '최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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