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미완성 교향곡

취향 2017. 3. 12. 22:07

미완성 교향곡

 

                                    김행숙


소풍 가서 보여 줄게

그냥 건들거려도 좋아

네가 좋아


상쾌하지

미친 듯이 창문들이 열려 있는 건물이야

계단이 공중에서 끊어지지

건물이 웃지

네가 좋아

포르르 새똥이 자주 떨어지지

자주 남자애들이 싸우러 오지

불을 피운 자국이 있지

2층이 없지

자의식이 없지

홀에 우리는 보자기를 깔고


음식 냄새를 풍길 거야

소풍가서 보여줄게

건물이 웃었어


뒷문으로 나가볼래?

나랑 함께 없어져볼래?

음악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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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속눈썹의 효능

취향 2017. 3. 12. 22:05

속눈썹의 효능

 

                                    이은규


때로 헤어진 줄 모르고 헤어지는 것들이 있다

가는 봄과

당신이라는 호칭

가슴을 여미던 단추 그리고 속눈썹 같은 것들


돌려받은 책장 사이에서 만난 단어, 속눈썹

눈에 밟힌다는 건 마음을 찌른다는 것

건네준 사람의 것일까, 아니면 건네받은 사람

온 곳을 모르므로 누구에게도 갈 수 없는 마음일 때

깜빡임의 습관을 잃고 초승달로 누운


지난봄을 펼치면 주문 같은 단어에 밑줄이 있고

이미 증오인 새봄을 펼쳐도 속눈썹 하나 누워 있을 뿐

책장을 넘기는 바람에도 날아가지 않은

출처 모를 기억만 떠나는 방법을 잊었다


아지랑이의 착란을 걷다

눈에 든 꽃가루를 호- 하고 불어주던 당신의 입김

후두둑, 떨어지던 단추 그리고 한 잎의 속눈썹

언제 헤어진 줄 모르는 것들에게는 수소문이 없다

벌써 늦게 알았거나 이미 일찍 몰랐으므로

혼자의 꽃놀이에 다래끼를 얻어 온 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 것은 온다는 역설처럼 당신의 입김 없이도 봄날은 간다


화농의 봄, 다래끼

주문의 말 없이 스스로 주문인 마음으로

한 잎의 기억을

당신 이마와 닮은 돌맹이 사이에 숨겨놓고 오는 밤

책장을 펼치면 속눈썹 하나 다시 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올 거라 믿는, 꽃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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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봄이에게

취향 2017. 3. 12. 21:59

봄이에게

 

                                    박치성


민들레게 어디서든

잘 자랄 수 있는건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는 바람에

기꺼이 몸을 실을 수 있는

용기를 가졌기 때문이지.


어디서든 예쁜 민들레를

피워낼 수 있는 건

좋은 땅에 닿을거라는

희망을 품었고

바람에서의 여행도 즐길 수 있는 긍정을

가졌기 때문일거야.


아직 작은 씨앗이기에

그리 조급해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리 불안해하지 않아도 괜찮아


넌 머지않아

예쁜 꽃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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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전부

취향 2017. 2. 6. 15:07

전부

 

                                    이병률

 

이 기차는 어디로 향하는

기차입니까, 라고 묻고 싶은데

이 나라 말을 알지를 못합니다


이 기차가

어질어질한 속도로 당신을 데려가

어디에 내려놓을지를 알고 싶은데

물음은 물컹 내 귀에 도로 닿습니다


당신의 시간의 옆모습을 바라봐도 되겠다고

믿고 싶어서

발목은 춥지 않습니다


지도 위에 손가락을 올려 묻고도 싶은 겁니다

우리가 아프게 통과하고 있는 지금은 어디입니까

우리의 막다른 증거는 쟁쟁합니까


안녕, 이라는 이 나라 말만 알아서

그 말이 전부이기도 하여서

멀거니 내 아래에다 인사만 합니다


기차 밖으로 번지는 유난한 어둠이

마음에 닿으려 합니다

큰일입니다

소홀한 마음이 자꾸 닿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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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나하나 꽃피어

취향 2016. 11. 27. 15:33

나하나 꽃피어

 

                                    조동화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느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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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너의 하늘을 보아

취향 2016. 9. 19. 13:12

너의 하늘을 보아

 

                                    박노해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네가 꼭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지금 길을 잃어버린 것은

네가 가야만 할 길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다시 울며 가는 것은

네가 꽃피워낼 것이 있기 때문이야

 

힘들고 앞이 안보일 때는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하늘처럼 생각하는

너를 하늘처럼 생각하는

 

너무 힘들어 눈물이 흐를 때는

가만히 네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가 닿는

너의 하늘을 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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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너 없는 동안

취향 2016. 4. 9. 20:04

너 없는 동안

 

                                    최정재

 

단지

보고싶다는 생각만 했다

눈물이 흐른다

 

그냥

마음속으로

이름 한 번 부른 것 뿐인데

너는 뼛속까지 스며와

나를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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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별2

취향 2016. 4. 9. 19:55

별2

 

                                    이정하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선뜻 그대에게 다가서지 않겠습니다

내가 그대를 묵묵히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은

내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대를 너무나 사랑해서임을 알아주십시오

 

오늘따라 저렇게 별빛이 유난스런 것은

가까이 다가서고 싶지만 참고 또 참는

내 아픈 마음임을 헤아려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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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널 만난 후, 봄

취향 2016. 4. 9. 19:53

널 만난 후, 봄

 

                                    박치성

 

널 만난 후로 나에게는

사계절 같은 건 없었어

 

내 속에 네가 들어와

뜨거운 꽃을 심었던

옅은 봄

 

그리고 그것이 만개해

꽃잎이 온 몸을 흐르던

찐한 봄

 

내겐 어쨌든 봄뿐이었어

널 만난 후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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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봄날은 간다

취향 2016. 4. 9. 19:51

봄날은 간다

 

                                    구양숙

 

이렇듯 흐린 날엔 누가

문 앞에 와서

내 이름을 불러 주면 좋겠다

 

보고싶다고

꽃 나무 아래라고

술 마시다가

목소리 보내오면 좋겠다

 

난리 난 듯 온 천지가 꽃이라도

아직은 니가 더 이쁘다고

거짓말도 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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