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2016. 9. 25. 15:48

  하루종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 맛도 향기도 없는 바람이 부는 밤엔 아무도 찾지 않는 언덕에 오르곤 해. 귓가의 볼륨을 맥스로 올리고서 양껏 소리치고 싶은 자신을 참아. 이제 되었단 생각이 들기 전까진 아무것도 하지 않아. 그리고 보란듯이 "이제 끝" 선언하고서 달에 말을 걸어. 대답은 들려오지 않아. 그래도 계속 걸어. 그러다보면 더는 털어놓을 마음이 없어져. 그땐 저쪽 한 구석에 대자로 누워버리는 거야. 머리카락이 엉킨다거나 옷에 풀물이 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잠깐 접어두고 말야.

 

  좋은 하늘이야.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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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둘

생각 2016. 9. 25. 15:01

자꾸만 마음이 무뎌지는 것 같다. 아파야하는데. 슬퍼야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게.

계속 무언갈 놓치고 또 스스로를 놓아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퍽 마음이 아팠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사랑하고 사랑받고 웃고 울고 아파하는 삶을 살기로 다짐했는데 고작 스물 두 해 살고서 이토록 심드렁하게 변해버리는 마음이라니. 너무 미웠다.

 

그리고 사랑을 잃었다.

어쩌면 잊은 것인지 모른다.

그저 아련한 무언가만이 마음에 남아 사랑이란 말을 뱉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그 마음은 나 자신에게도 예외가 없어 외로웠다.

 

날 사랑해 줄 누군가가 필요한데

그 누군가는

더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내 눈엔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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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월_나무

생각 2016. 8. 15. 20:46

  노을 질 녘. 명치 어디께에서 느껴지는 먹먹함에 mp3 하나 꽂아들고 기숙사를 걸어 나왔다. 오늘 같은 날엔 발길 닿는 대로 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머리를 비우고 한참을 걸었다. 간간히 한숨도 쉬었던가. 어딘지 모를 곳을 한참 떠돌다 햇빛이 완전히 사그러질 때 쯤 익숙한 길이 보였다. 이대로 주욱 가면 나무가 있을텐데. 그는 오늘 있었던 얘길 들어주려나. 나 때문에 꺾이어 뜯겨나간 나무라, 역시 나를 싫어하려나. 고민하는 사이 나도 모르게 나무 앞에 도착하고 만다. 언젠가 내가 많이 자라면 이 나무 앞 요 조금의 땅 만큼은 내 것으로 해서 이렇게 간간히 찾아와 앉아서 이야기 할 수 있으려나. 이제는 말라버린 단면에 손가락을 올리고서 가만가만 토닥여본다. 미안해. 미안해.

 

  언젠가 내가 나무가 되고 네가 사람이 되는 날

  내 가지를 부러뜨려도 좋아.

 

  아마도 그날

 

  우리는 친구가 되어서

  부둥켜 안고 함께 울 수 있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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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놀이

생각 2016. 7. 16. 23:57

  꽃놀이 하느라 가시 찔리는 줄 모른다더니 딱 그 꼴이다. 좀 더 어렸을 땐 '뭐야. 피나. 이런 거 안할래. 이건 꽃놀이도 아냐. ' 했었던가. 아. 물론 지금이라고 웃으며 '허허. 이것도 하나의 재미인 것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그랬으면 뭐. 내가 인생 다 산 꼬꼬 할머니게. 고작 스물 여덟 먹은 나는 마구잡이로 찔려 핏방울이 진 손가락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 아, 꽃놀이 하다보면 찔리는 거 였는데' 하면서 말이다.

 

-

 

  꽃놀이란 뭘까.

 

  꽃놀이를 정정당당히 맨 손으로 임하지 않고서 장갑을 끼면, 그건 나 자신을 속이는 동시에 꽃을 기만하는 짓일까. 꽃의 가시를 다듬는다는 건 내가 꽃을 있는 그대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 될까. 처음에는 장갑과 가시 다듬기로 시작했던 놀이가 방폭시트와 꽃가루로 끝나게 되면 그건 더 이상 꽃놀이라고 부를 수 없는 걸까.

 

  그간 이 문제에 '아니. 그것도 꽃놀이야' 라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없었다. 꽃놀이를 시작하기 전과 중, 후의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고 해도 그게 분명 잘못 된 건 아닌 것 같은데. 어디까지가 배려고 어디까지가 제살 깎아먹는 짓인지 스스로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치만 이젠 알겠다. 꽃과 내가 즐거우면. 그건 꽃놀이다. 쓰고보니 내가 즐겁지 않으면 혁명이 아니라던 『리틀브라더』 가 생각나네. 역시 사람은 책을 읽어야 하는 모양이다.

 

 

둘이 폭발을 하든.

한쪽이 가루가 나든.

 

둘 다 즐겁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닐까.

 

아파도

힘들어도

 

즐겁다.

그거면 된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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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지만 잊기 쉬운_

생각 2016. 2. 26. 23:50

1.

 

  어떤 생각을 했는데 그게 자꾸 나를 갉아먹는 느낌이 든다면 당장 그만 두어야 한다.

  그 생각을 떠올리기 전의 내가 아무 일도 없었듯, 내가 지금 그 생각을 그만둔다고 큰 일이 생기지도 않는다.

 

2.

 

  아무런 생각없이, 돌처럼 던지는 마음은

  받아주려고, 이해해주려고 혼자 애 쓸 필요 없다

  세상에는 그냥 지나쳐야 하는 마음도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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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원피스

생각 2016. 1. 24. 11:11

  유난히 달뜬 밤이다. 하아. 저 원피스는 또 뭐야. 허리가 텅 비었잖아. 지나가는 사람들이 저만 보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누구 보라고 이렇게 입어" 물으니, 너는 자신만만한 미소로 "자기 보라고" 하고는 팔랑이며 뛰어간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딱 여섯 걸음. 손이 닿을 만큼은 아니지만 언제든 잡아 올 수 있는.

  너는 딱 그 정도 거리에 멈춰서선 날 보며 갸웃거린다. "그래서, 싫어?"

 

  조놈의 입. 입. 조 입을 어떻게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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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ong

생각 2015. 10. 24. 20:12

여전히 모를 시간대의 당신도

이젠 안녕

 

오늘밤은 별이 총총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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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간다

생각 2015. 10. 24. 19:49

눈처럼 하얀 꽃의 길을 따라

너에게 간다


꽃보다 반짝이고

별보다 사랑스러운


너에게


색색깔 고운 말을 엮어

지금

 

너에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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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편지

생각 2015. 9. 19. 22:14

  몇 년이고 품고 있던 편지를 받아본 적도, 줘 본적도 있다. 오랜 기간 편지를 품고 있었다는 건 분명 그 만큼 간절한, 차마 버릴 수 없는 마음이 있었단 것 일텐데. 그 편지가 전해진 순간의 마음은 처음 편지를 썼을 당시의 마음과 그간 품고있던 마음과는 완전히 다른 전혀 별개의 모양이 되고만다.

 

  쓴 이의 마음은 몇 번이고 고쳐 쓴, 수 년을 간직해 온 편지 속이 아닌 세월 속에 박제되고 방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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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보이는 마을

생각 2015. 9. 19. 21:58

  나는 무서웠다. 아니 좋았다. 아니 불편했다. 같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과 같이 있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 매 순간마다 부딪쳤다. 하루종일 날 보며 웃지도 않고 굳어있는 당신 모습에 숨이 막혔다. 데이트 인듯 데이트 아닌 데이트 같은 오후, 하루종일 말 한마디 없던 당신이 내게 이리 가까이 와보라 말했다. 쿵. 심장이 내려앉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아직 당신과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노래를 듣는 척, 바람이 불어 못 듣는 척을 하고는 그 좁은 아파트 옥상에서 당신을 피해다녔다. 그러다 결국 당신과 마주쳤을 때, 당신은 내 배 언저리에 얼굴을 대고 앉아 본인이 얼마나 최악의 남자인지를 구구절절 읖어댔다. 울지 말아야지. 오늘 만나면 절대 우는 모습은 보이지 말아야지 하던 다짐이 무색하도록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순간이 바로 내 눈 앞에 있었다. 모진 소리를 끝낸 당신은 고개를 들고 내 얼굴을 보더니 적지 않게 놀란 것 같았다. 영겁과도 같은 몇 초가 흐르고. 당신은. 눈물 콧물로 엉망인 내 얼굴을 닦아주고서. 내 눈을 빤히 들여다보고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담담히. 말했다.

 

  "이런 나라도 괜찮으면, 사귀어 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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