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오늘의 철학

취향 2018. 1. 2. 18:14

 오늘의 철학

  

                                    김경미


친구는 내게 노출 드레스를 입힌 뒤

허리 안쪽을 옷핀으로 여며주고

겨드랑이 제모 상태를 확인한 뒤

뉴욕 뒷골목 클럽에 데려갔다

가는 내내 드레스 속 옷핀이 살갗에 차가웠으니


귀를 찢는 연주 소리와 춤과 술

나도 퇴폐와 환락을 좋아하지만

스스로를 신뢰할 수 없을 만큼 좋아하지만


나는 슬픔 속에서 더 안전할 것이며

초라함이 일상의 무대의상일 것이며

발은 주로 한 박자 늦을 것이며

심장은 소규모를 떠나지 못할 것이며


이것은 내 옷이 아니며

이 사람은 내가 아니며

이 생은 내가 원하던 모습이 아니라고


허리 속에서 풀려버린 차가운 황금색 옷핀이

자꾸 살을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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