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2021. 2. 22. 18:33

  꿈에 네가 나왔어. 우리가 헤어지고 얼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잠깐 떠올려봐. 이제 한 손으로도 다 못 꼽을 정도의 세월이구나. 벌써 그렇게 됐네. 그 긴 세월동안 너는 작가가 되어있었어. 몇 권인가 책을 냈고 유명하진 않아도 제법 글로 먹고사는 사람 티가 나더라. 아주 오랜만에 만난 내게 너는 아주 작은 책을 줬어. 그 책엔 네가 썼던 몇개의 꼭지글이 있었고 그 글의 모델이 나라는 건 세상에 너와 나밖에 모를 일이었지. 네가 보던 나와, 나를 보던 너의 마음이 그 꼭지글들에 그대로 들어있더라. 얼굴이 조금 빨개졌을까. 심장이 콩닥콩닥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어. 그때 네가 반지를 끼워주면서 내게 청혼하더라. 너는 내게 "결국, 우리는 이렇게 될 거라고 난 알고 있었어" 라고 굉장히 결연하고 담담하게 얘기했어. 그 목소리를 듣고나니까 아주 오래 전의 내 마음과 내가 좋아하던 네가 마구 섞여서 떠오르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더라. 정말 영겁과도 같은 1분이었어. 그리고 딱 1분 뒤, 나는 숨을 고르고 너에게 얘기했어. 나는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따로 있다고. 아직 그 사람과 결혼을 약속하지도 않았지만, 그 사람의 마음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그사람과 결혼하고 싶다고. 너를 좋아했던 마음이 저기 어딘가엔 아직 살아 숨쉬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찾고싶지 않다고. 내가 지금 좋아하는 건 다른사람이라고. 그렇게 말했어. 그 때 너의 표정이 어땠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아. 아마 중요하지 않아서겠지.

 

그 정도의 사람이 되었나봐 내게. 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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