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생각 2018. 3. 19. 19:15

  연극 연습을 마치고 나오는 길,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다. 빗방울이 굵긴 했지만 뭐, 이정도 쯤이야. 마침 가방에 젖으면 안될 물건도 없었고. 내 엠피삼은 원체 건장하시니. 휴대폰 정도만 점퍼 안 주머니에 잘 넣고 걸으면 기숙사까지는 괜찮을 것도 같았다. 으쌰! 그럼 오랜만에 비나 한번 맞아 볼까나―

조금은 후련한 발걸음으로, 특별히 뛰거나 머리 위를 가리지도 않고서, 용감히, 터덜터덜. 그렇게 3분쯤 걸었을까. 조장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야? 밖에 비오는데 우산 있어?"

  "여기 학관 앞이요! 근데 괜찮아요! 금방 가요"

  "괜찮긴 뭐가 괜찮아. 더 가지말고 거기 비좀 피하면서 있어. 사람 보낼께"

  "아? 아니에요! 저 어차피 젖어가지고!! 진짜 괜찮ㅇ...."

 

뚜―뚜―

 

  으으. 정말 괜찮은데. 뭐, 왔어도 나 없으면 알아서 가겠지.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다시 터덜터덜. 도저히 정리되지 않는 지난 일을 곱씹으며 이런저런 감상에 빠질때쯤 머리 뒤쪽으로부터 불쑥 낯선 우산이 씌워졌다.

 

  "가지말고 있으라니까요"

 

  부조장이었다. 거친 숨이며 바짓단이며 영락없이 뛰어온 모양새였다.

 

  "어디까지 가요? 데려다 줄께요"

  "아, 저 4생이요. 근데 괜찮아요. 어차피 다 젖었고. 그냥 가던길 가셔도 돼요."

  "저도 어차피 그쪽으로가요. 같이써요"

  "....."

  "....."

  "아니 저, 진짜 비 맞는거 좋아해요. 진짜 가셔도 돼요."

  "저도 좋아하는데요, 감기걸려요. 같이 써요."

 

 

 

  그랬다. 

당신 말대로.

썩 괜찮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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